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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김현주의 일상 톡톡] 안전불감증 넘어 '생명불감증'…이대목동병원 참사 의료진 개인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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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목동병원은 1993년 개원 이후 지난해 말 신생아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25년간 감염관리 지침을 어기고, '분주'(영양제를 나눠 투여) 관행을 계속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0년 국제인증기준인 '처방과 투약의 일치' 원칙에 따라 지질영양제 처방을 '환아 1명당 매일 1병씩'으로 바꾼 뒤에도 이를 간호사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은 주사제를 균에 감염될 우려가 큰 상온에서 보관하거나, 분주를 투여 직전이 아닌 몇 시간 전에 할 정도로 기본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요양급여 비용을 청구할 땐 1명당 1병씩 맞힌 것처럼 위장하여 비용을 받아내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위법 관행이 최고등급의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경찰은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지만, 관련자 사법처리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건당국은 병원 측에 상급종합병원 지정 취소 등 엄중한 책임을 물어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하고, 다른 대형병원에서도 주사제 나눠쓰기 정황이 있는 만큼 철저하게 조사해 결과를 국민들에게 낯낯이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상급종합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는 최근 간호사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상습 투여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간호사 마약 투약은 개인 일탈로 볼 여지도 있지만, 이 병원에서는 의사의 과다한 마약성 진통제 처방 의혹도 제기돼 병원 약물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의료인 마약 투약 등 병원 내 부실한 약물관리는 환자 안전과 생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보건당국이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세계일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는 관행처럼 굳어진 주사제 나눠쓰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서울대병원에서는 간호사가 마약을 상습 투여한 사실이 적발됐다. 병원 내 허술한 약물관리가 연이어 불거져 여론이 더욱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병원 내 약물관리 감독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확산하자 보건당국도 전담인력 보강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경찰이 이대목동병원 사고 원인이 주사제 1병을 여러 명에게 나눠 투약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한 날, 공교롭게도 서울대병원 간호사가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을 상습 투여한 사실도 밝혀졌다.

의료계에서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는 고질적인 저수가와 인력난 등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고, 서울대병원 간호사의 마약 투약은 부도덕한 개인의 문제이므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주사제 나눠쓰기' 관행처럼 굳어져…안전한 의약품 투약, 약사 역할 더욱 강화돼야

두 사건 모두 병원 내 부실한 약물관리에서 비롯한 데다, 환자에게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다른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특히 주사제 나눠쓰기가 감염 위험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료인의 마약 투약은 환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로 불거질 우려가 있다.

최근 잇따라 부실한 약물관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의료계 안팎에서는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환자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전담인력에 약사를 추가해야 한다는 한국병원약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일보

환자안전법 시행으로 200병상이 넘는 의료기관은 환자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병상 규모별로 의사와 간호사 등을 배치해야 하는데 여기에 약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병원약사회는 "신생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약물관리가 환자 안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환자에 안전한 의약품이 투약 되고 관리되기 위해선 약사 역할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병원약사회는 환자단체, 보건복지부 관계자와의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전달했고, 복지부도 전담인력에 약사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병원약사회 "환자 안전 담당하는 전담인력에 약사 추가해야"

이대목동병원이 신생아중환자실 폐쇄를 유지하기로 했다. 환자안전과 감염관리를 개선되기 전까지 관련 진료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대목동병원은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 따라 이러한 내용의 환자안전을 위한 종합개선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우선 사고가 벌어진 신생아중환자실은 진료가 정상화되기 전까지 전면 폐쇄키로 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사망 사고 후 폐쇄됐으며 진료 재개 여부에 관심이 쏠려왔다.

이대목동병원은 전체 병원의 환자안전과 감염관리 기능을 재정비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 관련 작업이 마무리된 뒤 진료를 재개할 예정이다. 감염관리 개선 결과는 국민에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환자안전을 위한 시설 강화와 시스템 혁신에도 나선다. 병원 전반에 걸친 시설 보강 및 신생아중환자실, 항암조제실, TPN(총 정맥 영양) 무균조제실 등의 시설을 개선한다. 감염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한 신생아중환자실 전 병실 1인실 설계 및 음압·양압 격리실 설치, 신생아 전담 의료진과 간호사의 확충 등을 시행한다. 이 대책 중 확정된 것을 시행하는 데 올해만 약 50억원을 투입한다.

문병인 이화의료원장은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상처와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사고를 환자안전을 위한 대대적인 혁신의 계기로 삼아 시설 개선은 물론 진료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환자가 가장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환골탈태하겠다"고 강조했다.

◆분주 감염 우려 확산…주사제 나눠쓰기 관행 사라질까?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발생 후 일선 병원에서 주사제 나눠쓰기 관행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 후 분주로 인한 감염 우려가 확산하면서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주사제 나눠쓰기를 지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한신생아학회가 전국 77개 신생아중환자실에 의뢰한 실태조사 설문에 따르면 이대목동병원 사고일(지난해 12월16일) 전후 지질주사제 '스모프리피드' 1병을 주사기에 담아 환자 2명 이상에 사용하는 경우는 44.2%에서 3.9%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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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주사제 한 병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사고 전 20.8%에서 사고 후 53.3%로 급증했다. 주사액을 주사기에 담되 환자 1명당 1병만 사용하는 경우 역시 35.1%에서 42.9%로 증가했다. 즉, 주사제 1병을 2인 이상에 투여하는 분주 경향이 눈에 띄게 감소한 셈이다.

분주가 줄어들면서 지질주사제 제품 자체도 소용량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100cc 용량의 지질주사제를 사용한다는 신생아중환자실은 사고 전 75.3%에서 사고 후 91.8%로 늘어난 반면, 250cc 용량 제품을 사용한다는 응답은 21.9%에서 5.5%로 줄었다. 500cc 제품은 2.7%로 변화가 없었다.

주사기에 주사액을 나눌 때 병원 약사 등 약제팀이 담당한다는 응답은 사고 전 13.3%에 불과했다. 사고 후에는 29.6%로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신생아중환자실 내 간호팀에서 분주를 담당하는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총정맥영양수액제(TPN)의 휴일 및 주말 조제 간격도 사고 후 크게 단축됐다. 사고 전 TPN을 주말과 휴일에도 매일 조제한다는 신생아중환자실은 29.3%였으나 사고 후에는 51.4%로 변화했다. 2일 이상 간격으로 TPN을 조제했다는 응답은 70.7%에서 사고 후 48.7%로 줄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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