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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화통토크]①“농업·농촌 발전 없인 선진국 진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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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인터뷰

"헌법 가치 반영 논의…반갑지만 갈 길 멀어"

“다양한 창조계층이 ‘농촌 유토피아’ 만들 것”

“농업도 4차 산업혁명 시대…농사 쉬워질 것”

이데일리

[나주=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후진국은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지만 농업·농촌 발전 없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말이다. 지난달 26일 전남 나주시 혁신도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농경연)에서 만난 김창길(58) 원장은 쿠즈네츠의 말을 인용하며 “선진국치고 농업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빠른 산업화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농촌은 소외됐다. 농업은 식량 생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 사이 농촌은 공동화, 고령화했고 농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김창길 원장은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선진국을) 따라가도 좋았으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이제 아직 가보지 않은 새 판을 짜야 한다”며 “농업·농촌이 이를 이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분야”라고 말했다.

◇“헌법 가치 반영 논의…반갑지만 갈 길 멀어”

최근 농업·농촌 인식에도 변화 움직임이 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에도 농어촌의 가치가 담겼다. 제127조엔 경자유전(耕者有田·소작제 금지)의 원칙, 제129조엔 국가가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생태 보전 등 농어업의 공익적 기능을 바탕으로 농어촌의 발전과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 원장은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은 담겼다”며 반겼다.

김 원장은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독일은 헌법에 ‘국민은 국토 어디에서나 동일한 수준의 생활 여건을 누려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실제로도 도시와 농촌의 삶의 질을 맞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한다. 우리도 특별법을 통해 응급서비스나 광대역 통합망 같은 17개 서비스에 대한 농어촌 기준을 정해 놨으나 기준 자체가 낮을 뿐더러 그나마 정해진 기준의 달성률도 평균 40%에 못 미친다. 그는 “이미 있는 기준부터라도 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업·농촌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선진국도 비슷하다. 스위스 헌법은 환경 보전이나 전통문화 유지 같은 농촌과 농업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를 공공재로 인정한다. 이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도 규정해 놓고 있다. 미국 일부 주(州) 헌법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식료기본법을 통해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농정의 기본 이념으로 삼는다. 김 원장은 “선진국 대부분 농어업보다 제조·서비스업 비중이 훨씬 크지만 그럼에도 농촌·농업에 큰 비중을 두고 개발한다”며 “수치로 잡히지 않는 공익적 기능까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창조계층이 ‘농촌 유토피아’ 만들 것”

고령화한 농촌이 되살아나려면 젊은 인재가 와야 한다. 또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매력이 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도시를 떠나 지방 중소도시, 농촌에 정착하는 사람이 연평균 40만여명이고 그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정착이 쉽지만은 않다. 오랜 기간 소외돼 온 농촌 사회는 인프라가 부족하다. ‘외지인’에 배타적이다.

김 원장이 ‘창조계층’이란 개념을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농경연이 현재 연구 중인 프로젝트의 하나다. 문화·예술작품을 만들고 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을 불러모아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농촌 특유의 배타성도 인적 교류, 문화적 교류를 통해 풀어낼 수 있다. 그는 “귀촌한 사람이 농사만 지으라는 법은 없다. 글 쓰던 사람은 글로 기획하던 사람은 기획으로 농촌에 정착해 현지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며 “앞으로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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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도 효용가치가 있다. 도시인 한 명이 농촌으로 가면 도심의 교통 혼잡이나 환경오염 처리 등 사회적 비용이 연 170만원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농업은 극심한 청년 실업난 해소의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식품, 유통, 농약, 농기계를 포함한 농업 관련 일자리는 전체 국민 고용의 17%에 달한다. 취업계수(산출액 10억원당 취업자수)도 농업 분야는 12.4명으로 타 산업 6.4명의 거의 두 배다. 수치상으론 같은 10억원을 투입한다면 농업에 투입했을 때 고용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현재 귀농·귀촌인 중 30대 이하가 50.1%”라며 “농촌이 살기 어렵고 힘들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 유토피아, 낙원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업도 4차 산업혁명 시대…농사 쉬워질 것”

농사 짓기 쉬운 시대도 다가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타고 농업에도 인터넷 통신 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팜(Smart Farm)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현재는 온도나 수분을 확인·조절하는 수준의 1세대 스마트팜을 보급 중이지만 생체정보와 생육관리 기능을 포함한 2세대 스마트팜이 올해 안에 나온다. 2020년에는 자동화·로봇화를 더한 3세대도 개발해 보급·수출한다는 목표다. 최첨단 시설을 갖춰 기상 조건과 무관하게 양질의 농산물을 키우는 ‘식물공장’의 등장도 머잖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농업은 육체 노동 중심이던 지금까지의 농업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며 “농업인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네덜란드에선 이미 스마트폰만으로 농사를 짓는 농장이 생겨났다. 일본은 대형화, 기업화한 식물공장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도 이를 뒤쫓고 있다. 스마트팜 도입은 대형화 덕분에 생산 비용을 낮춘 해외 농산물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농업의 4차산업혁명은 필요하다. 평균 기온이 1도 오르면 주산지가 80㎞ 북상한다. 사과 주산지가 대구·경북에서 강원도로 이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머잖아 한국이 아닌 북한이 주산지가 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주식인 쌀이다. 우리와 기후 조건이 비슷한 일본에선 2100년이면 평균기온이 4.6도 올라 벼 재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 원장은 “기후변화에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며 “이와 무관하게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식물공장을 비롯해 상승하는 평균 기온에 맞춘 새 품종과 재배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길 원장은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농업경제학 부문에서 미국 일리노이대 석사, 오클라호마주립대 박사학위를 땄다.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자원환경연구부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쳤다. 기획재정부 중기재정협의회 농림해양분과 위원장,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농업환경정책위원회 의장, UN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기후변화식량농업전문가, 세계농업경제연구기관장 협의회(Global Club)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6년 6월 농경연 제14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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