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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어이없는 실수로 드러난 삼성의 민낯…‘사건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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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지난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보유 직원들에게 배당금을 주면서 28억원 대신 28억주(113조원 규모)를 잘못 지급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총 발행주식수 8930만주, 정관상에 기재된 발행가능주식수 1억 2000만주보다 각각 31배, 23배 많은 주식이 배당이 된 셈이다. 특히 일부 직원들이 이 유령주식을 500만주 넘게 내다 판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과 함께 국내 증권시장 유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삼성증권의 분봉 차트 및 취재 내용을 토대로 이 사건을 재구성했다.

◇ 한 삼성증권 직원의 하루…놀라움→탐욕→두려움→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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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모 영업점에 근무하는 나탐욕(가상)씨는 6일 평소와 같이 오전 7시에 출근했다. 출근 후 해외 증시 마감 상황과 국내외 주요 일정 등 국내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을 정리하며 개장을 준비했다. 이날 삼성전자가 1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했지만 약세로 출발하는 것을 보면서 강세장에 대한 기대감은 버렸다.

그렇게 30분이 흐른 후 나씨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본인의 주식 계좌에 들어 있던 우리사주 주식 500주가 50만 500주로 불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자산 평가금액은 무려 200억원. 뭔가 잘못된 것은 직감했지만 상관없었다. 착오든 뭐든 본인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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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35분. 우선 2만 5000주를 시장가로 매도 주문했다. 주가가 3만 9600원에서 3만 8500원까지 떨어지며 모두 거래가 체결됐다.

친한 동료와 동기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공유했다. “계좌 확인해라. 실제 매매도 된다”라고. 그리고는 10만주, 30만주 계속 시장가 주문을 넣었다. 50만주를 모두 파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가가 3만 6000원대로 곤두박질쳤지만 5%가 빠지든 10%가 빠지든 당장 현금화하고 싶은 맘뿐이었다.

오전 9시 39분. 주가 변동으로 일시적으로 거래를 제한하는 정적 변동성 완화장치(VI)가 발동됐다. 서둘러 주식을 판 것에 안도했다.

15분 후쯤 한 동료는 100만주 매도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무려 400억원을 손에 쥐게 됐다며 흥분 상태였다. 이때 주가는 3만 5150원(-11.7%)을 찍고 있었고 또다시 VI가 발동됐다.

주식시장에서 삼성증권이 이슈 종목으로 떠올랐다. ‘주문 실수’, ‘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영향’, ‘삼성증권 매각’ 등 주가 급락 배경과 관련해 온갖 루머가 떠돌았다. 이후 ‘배당 실수’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주당 1000원 대신 1000주가 지급됐다는 내용이었다.

나씨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삼성증권 직원 2239명 중 2000여 명이 283만 1620주(지분율 3.17%)의 우리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주당 1000원의 현금배당이 결정된 만큼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들에게 총 28억 3162만원이 나가야 하는데 관리부서 직원이 ‘원’ 대신 ‘주’로 입력하는 바람에 28억 3162만주(5일 종가 기준 113조원 규모)가 지급된 것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입력을 실수한 직원이 문제를 바로 인지했지만 보고 및 내부 조치 등을 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자 주식 매도를 금지하라는 사내 공지가 떴다. 이미 주식을 팔아버린 상황에서 불안감이 밀려왔다. ‘주식 매도 대금을 챙길 수 있을까’, ‘이번 일로 회사에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깊어질 때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감사팀이었다. 잘못 들어온 주식을 매도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계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 주문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는 추후 회사 측의 공식적인 해명 입장이 돼 있었다.

사내 정보를 통해 이날 약 20명의 직원이 총 501만 2000주(0.18%)를 매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사 측에선 이날 장이 마감하기 전까지 판 주식수 만큼 다시 사들이도록 했다. 나씨를 비롯해 서둘러 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의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주가는 점차 낙폭을 줄여나갔다. 오전 주가가 급락하면서 5차례나 발동했던 VI가 오후에는 상승 변동성으로 2차례 발동되기도 했다. 나씨는 힘겹게 50만주 매수에 성공했지만 평균 매도가격보다 매수가격이 높았던 탓에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회사 측에서는 손실 부담에 대해서는 추후에 얘기하자는 입장이다.

다른 직원들은 매도한 주식수량을 다 채우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다행히 회사 측에서 대차 등을 통해 필요 주식은 다 채웠다고 한다.

유령주식을 팔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평소 50만주 이내로 거래됐던 삼성증권 주식 거래량은 2070만주로 불어났다.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570만주가 매도됐고 360만주가 매수됐다.

이날 유령주식을 산 주주들은 오는 10일 정상적으로 주식이 계좌에 입고된다. 삼성증권 직원들이 실물도 없고 한국예탁결제원에 등록도 되지 않은 유령주식을 매도했지만 회사 차원에서 해당 물량만큼 주식을 확보, 10일 매수자들에게 주식을 넘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나씨는 탐욕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계좌에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주식이 입고되고, 그것이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자신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하게 된 현실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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