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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기자수첩]피랍 상황 그대로인데 엠바고 뒤집은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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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 사건 이례적 엠바고 해제

비보도로 안전보장 필요 여전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지난 토요일(3월 31일) 저녁 ‘가나해역 한국인 피랍’ 뉴스가 일시에 쏟아졌다. 우리 국민이 피랍된 것은 현지시간으로 26일, 외신이 이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28일이다. 언론들이 피랍 사실을 알면서도 함구했던 것은 외교부가 국민의 생명이 담보된 중요 사안이라며 ‘엠바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엠바고는 취재원과 기자가 합의해 보도 시점을 미루는 것을 뜻한다. 우리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이니 만큼 ‘국민의 알 권리’보다 앞서는 가치임은 당연하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기자들에게 앞서 두 차례 사건 경위 등을 설명하며 엠바고를 요청했고 기자단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31일 외교부는 갑자기 엠바고를 해제하고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피랍된 한국인 구출’이 아닌 ‘가나해역 한국인 피랍’ 소식이었다. 여전히 우리 국민들은 억류된 상태였고 안전 보장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외교부는 외신보도, 가족들과 협의, 긍정적 상황 등을 이유로 들었다.

외신에서 첫 보도가 나온 시점이 28일임을 고려하면 이는 엠바고 해제의 이유가 되기 어렵다. 가족들과 협의를 한다고 해도 이역만리 먼 곳에 피랍된 국민의 생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좋은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는 희망섞인 이유는 피랍인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 외교부가 해선 안될 말이다.

외신과 별개로 국내 보도를 통해 해당 사실이 이슈로 부각될 경우 인질범이 위협수위를 높일 수 있다. 비보도를 유지해 국민 안전을 보장해야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지난 2016년 10월 말레이시아 인근 해상에서 피랍된 한국인 선장이 2017년 1월 석방될 때도 외교부의 요청으로 엠바고가 유지됐고, ‘아덴만 작전’으로 알려진 2011년 삼호 주얼리호 피랍사건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엠바고를 유지하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외교부의 보도자료에 당초 상황설명과 달라진 내용이 있긴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대 노력을 지시했고 그에 따라 문무대왕함을 급파했다는 점이다. 문무대왕함 급파가 무리하게 엠바고를 해제하면서까지 전해야 할 내용이었을까? 문무대왕함은 여전히 보름을 더 항해해야 가나해역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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