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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신율의 정치 읽기] 봄이 온다? 낙관적 기대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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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XIN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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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는 이번 우리 예술인들의 평양 공연 제목이란다. 정말 이 제목처럼 한반도에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한반도에는 봄이 올까? 이런 제목은 최소한 얼마 전까지는 정부가 지금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남북미 3자회담 제안이 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에서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미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 남북미가 모여 종전 선언까지도 가능하다는 청와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국민들도 한반도의 평화가 이미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봄이 온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성급해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난 26일 밤 뉴스들은 북한의 ‘1호 열차’로 보이는 열차가 단둥을 지나 베이징을 향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또한 이 열차가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 중국 당국은 좀처럼 보기 드문 대대적인 경호를 실시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열차에 탄 인물과 오찬을 했다고 한다. 이 인물은 바로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이른바 ‘중재 외교’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도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김정은이 중국 방문 때 열차를 이용했다는 부분부터가 중요하다. 김정일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그래서 열차를 이용해 중국을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다르다. 김정은은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는 모습을 TV에 보여줄 정도로 비행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김정은이 중국에 갈 때는 열차를 타고 갔다. 그것도 20여시간 정도 걸려서 말이다. 이는 김정은이 자신의 방중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탄 열차는 방탄 열차기 때문에 그 무게가 무거워 시속 70㎞ 이상을 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김정은은 이런 열차를 타고 느릿느릿 중국을 향해 가야만 노출이 잘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이렇듯 김정은이 자신의 방중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 한 이유는 미국에 자신들도 중국이라는 이름의 ‘보험’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미북정상회담이 불발되거나 아니면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뒤에는 중국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는 말이다. 북한이 이렇듯 미북정상회담의 성사와 그 결과에 대해 자신이 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들을 대거 등용시킨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미국 정계의 대표적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튼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고 역시 대북 강경파인 폼페이오 전 CIA 국장이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 그런데 이들 모두 대북 강경파라는 점 말고도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이 또 있다. 존 볼튼은 리비아식 모델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과거부터 북핵 해법으로 우크라이나식 해법과 리비아식 해법이 거론돼왔었다. 그런데 볼튼이 리비아식 해법에 더욱 관심을 갖는 이유는 리비아는 핵 포기 의사를 밝힌 후 22개월이라는 단기간 내에 핵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리비아가 이렇듯 신속히 핵 포기 과정을 밟았던 이유는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봉쇄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 볼튼이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리비아식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다. 북한은 리비아 카다피의 최후를 봤기 때문에 이런 식의 비핵화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입장에서는 리비아가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과연 카다피가 그런 최후를 맞이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난다고 하더라도 획기적인 타협안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지금 존 볼튼은 미북정상회담의 장소로 스위스 제네바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부분도 북한으로서는 매우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다. 볼튼은 최근 “(미북정상회담은) 1991년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교장관이 만났던 방에서 열려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 방에서 열린 회담이 성공적이었다면 모르겠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회담이 실패한 후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은 이라크 침공을 지시했다. 그래서 북한으로서는 이런 부분도 상당히 불쾌할 것이라는 것 역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존 볼튼은 의도적으로 이러 제안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존 볼튼은 아마도 북한의 김 씨 왕조의 사고체계가 김정은에 이르러서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볼튼은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탄두를 미 본토 목표물까지 운반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협상을 천천히 끌고 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미북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비핵화를 할 것인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언급 속에서 미국 측은 리비아식 해법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을 북한이 알아채고 중국에 다시금 구애의 손길을 뻗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북한이라는 지렛대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즉,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함과 동시에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북한은 북한대로 중국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협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려고 한다는 양국 이해관계의 교집합이 이번 북중정상회담이었다.

이번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미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특징도 있다. 김정은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한국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답하고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만든다면, 평화를 위해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 과정에서 중국과 전략적인 소통을 강화해 공동으로 대화 협상의 모멘텀과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북한은 미국과 우리에게 제재 완화를 비롯한 자신들이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놓은 체제 안전조치를 단계적으로 먼저 이행해야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는 한미 합동훈련 중단으로부터 시작해서 주한미군 철수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제안을 우리는 물론 미국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존 볼튼이 북핵 해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리비아식 해법은 북한이 먼저 조건 없는 비핵화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북한이 나올 경우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회담장을 즉시 박차고 나오거나 아예 회담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우리 정부는 겉으로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이 한반도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는 진짜 상황이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지금 알려진 김정은의 언급 때문에 미국 행정부가 판을 걷어찰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우리나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대가’를 먼저 제안했다면 미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남북정상회담의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정상회담 전략이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아마도 우리 정부는 당황했을 법하다. 강경한 미국을 달래고 입장이 바뀐 북한을 잘 설득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봄이 아니라 겨울이 다시 올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봄이 온다’는 말은 그래서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2호 (2018.04.04~04.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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