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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엄마의 엄마되기 공부, 아빠의 아빠되기 공부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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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에게 '(음식을) 흘리지 말고 먹으라'는 말을 수없이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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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37] "밥 먹다 흘린 음식을 자꾸 식판으로 감춰요. 부끄럽다고요.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아요." 새로 들어간 어린이집의 교사는 4살 된 첫째의 행동을 이같이 설명했다. 음식을 흘리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다만 교사가 음식을 치울 수 있게 말해달라고 했지만 아이는 매번 흘린 음식을 식판으로 가리거나 바지 사이로 감춘다고 했다. '흘리지 말고 먹어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 한 마디가 아이의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첫째를 낳고 내게 주어진 9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엔 육아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아이의 뇌는 어떻게 발달하는지,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 등이다. 월령별로 어떤 장난감이 필요한지 미리 알아봐 주문했고, 손수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며 정성으로 키웠다. 극성일 정도로 엄마 역할에 충실하던 나는 복직과 동시에 달라졌다.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다보니 육아 관련 책을 읽는 것은 꿈도 못 꿨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 8시가 넘는 까닭에 친정에 맡긴 아이를 데려와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다 보면 어느새 자정이 됐다. 돌 전에는 아이 발달이 급격히 이뤄져 장난감을 자주 교체해줘야 했지만 돌 이후에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보는 게 뜸해졌고 둘째를 임신하고부터는 내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들어 퇴근하면 거실에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다.

아이가 음식을 탐색하고 스스로 먹도록 하는 게 좋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밥 먹다 말고 거실을 활보하는 아이가 행여나 음식을 소파에 묻힐까 노심초사하다 보니 아이에게 안 좋은 줄 알면서도 텔레비전을 틀어준 채 밥을 먹인 적도 많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에게 '흘리지 말고 먹으라'는 말을 수없이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흘린 음식은 늘 내가 먼저 치워주었기에 아이가 음식을 그릇으로 가리는 줄도 사실 몰랐다. '부끄럽다'고 말하는 아이를 그저 귀엽게 생각했을 뿐, 아이가 실수를 두려워 한다거나 혼날까봐 움츠려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조심해, 떨어져, 위험해'라는 말도 습관적으로 하고 있었다. 엄마가 겁이 많은 탓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거울과도 같아서 엄마가 무서워하는 것은 아이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위험한 상황에서는 조심하란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이가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넘어지고 실패하며 성장하는 기회를 놓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남편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본인도 '안 돼'라는 말을 줄이겠다고 한다. 아이가 뛰놀기에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흘리고 쏟으며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하겠단다. 둘째 밤잠을 재우려고 30분째 차를 타고 동네를 돌던 지난밤, 첫째는 카시트 앞에 놓인 딸랑이 두 개를 발로 흔들어댔다. 남편은 안 된다는 말 대신 '조금만 조용히 흔들면 어떨까?'라고 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다보면 부모도, 아이도 바뀌지 않을까.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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