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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문재연의 외교탐구] 靑 “북핵 리비아식 불가능” 발언, 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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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북핵협상 테이블에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올려놨던 정부가 ‘단계적 비핵화’를 다시 꺼내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동결→폐기’라는 단계적 북핵해법을 제안했지만, 지난달 초 북미 정상회담을 타진한 이후 ‘톱다운’(top-down) 방식의 일괄타결을 비핵화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다시 단계적 비핵화로 선회했다.

핵심은 ‘합의 방식’과 ‘이행 방식’에 있다.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하는 정부는 핵폐기 단계를 조금씩 잘라 보상을 받아온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막강한 힘을 이용해 대결구도나 담론을 주도하는 미국의 ‘프레이밍 전술’의 사이에서 북미 모두를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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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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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효과 드러나기 시작한 北ㆍ정치스캔들에 휘말린 美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핵협상 셈법은 복잡해졌다. 하지만 북핵협상을 둘러싼 판의 흐름이 달라진 건 아니다. 어차피 ‘세기의 협상’은 북미 정상회담이 차지하게 된다. 북핵협상에서 가장 큰 지분은 차지하는 것은 핵보유를 고집하는 북한과 체제보장 카드를 쥐고 있는 미국이다.

모든 협상은 접점이 있어야 성사된다. 25년 간 성사되지 않었던 북미 정상회담이다. 선(先) 비핵화 후(後) 대화를 요구했던 미국과, 선(先) 적대시 정책 철회와 후(後) 대화를 주장했던 북한 정상이 대화테이블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유례없는 대북제재와 미국 내 정치스캔들 파장이 있다. 지난해 4차례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이후 북한 내에서는 제2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헬싱키 회의에서 북한도 제재 효과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북한경제리뷰 2월호’에서 북한의 수출 물량이 전년보다 78.5% 감소했다고 했다. 석탄은 감소한 교역 중 79% 차지해 절대적 영향력을 보여줬다. 북한의 신규 해외파견 노동자들을 수용하는 것도 유엔 안보리 제재 사항이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적 위축이 불가피했다. 더 이상의 제재는 핵ㆍ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하는 김정은 정권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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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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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타결 뒤에는 정치스캔들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처한 위기상황을 돌파하려는 개인적 승부수일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 일가가 운영하고 있는 ‘트럼프 그룹’에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뮬러 특검이 처음으로 트럼프 일가의 사업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통령 대면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돈으로 봉인하려 했다는 섹스스캔들이 잇따라 해제되고 추가 폭로까지 이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위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미국 경제지표가 호조세로 바뀌면서 지지율이 역대 최고점을 찍은 상황이지만, 지지율은 40%대 초반인 상황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도록 함으로써 재선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위신을 높일 ‘정치 이벤트’가 절실하다.

▶북미 ‘일괄타결’ 가능할지도…문제는 ‘이행방식’

북한은 병지노선의 돌파구가 필요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이벤트가 필요하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ㆍ평화체제 일괄타결’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단을 앞두고 대북 강경론을 주장해온 인사를 중심으로 외교안보라인을 재편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목소리로 나온다. 하지만 북한 선제타격을 주장해온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장관 내정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역사적 타결을 한 이후 진행될 이행과정을 위해 정비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모든 북핵협상은 합의단계가 아닌 이행단계에서 결렬됐기 때문이다. 볼턴과 폼페이오의 내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기의 거래’라는 트로피는 일단 챙기고, 이행단계에서 북한을 압박할 밑작업을 해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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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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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매듭을 한번에 잘라 해결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일괄타결해야 한다던 청와대가 북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단계적 ‘실무조치’를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사재편을 통해 이행단계로 접어든 북핵문제를 타결한 로드맵을 외부에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과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단계적 조치’를 언급하며 실무단계에서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합의 타결’ 의지가 확인된 동시에 실무단계에서의 의견조율이 과제로 부각된 것이다.

결국 한반도 운전자론의 운명은 비핵화 ‘이행단계’에 걸려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달 30일 비핵화를 위한 정부의 대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중자재로서 보면 (미국과 북한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며 “그걸 조정하고 타협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이행 방법으로써 ‘행동 대 행동’을 고집하는 북한과 ‘북한 행동→검증→체제보장 여부 결정’ 단계를 고집하고 있는 미국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게 우리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일단 현 단계에서 정부는 북미 간 신뢰형성을 위해 ‘리비아식’ 이행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선 비핵화 후 보상을 골자로 한 미국의 ‘리비아식 북핵해법’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자문단이자 대통령 통일외교특별보좌관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31일 이행단계에서는 순차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면 우리 정부가 유엔에 중국, 미국과 같이 제재 완화를 요청할 수 있다”며 “북한 문제에 대해 낙관론도, 비관론도, 회의론도 존재하지만 모두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남북 회담을 잘 준비하되, 그 과정에서 북한을 악마화시켜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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