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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경찰, 수사권 쥐기 전에 개혁이 먼저 아닌가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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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허재현 사회에디터석 24시팀 기자 catalunia@hani.co.kr

한겨레

이철성 경찰청장이 3월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마친 뒤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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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찰청을 출입하고 있는 허재현이라고 합니다. 경찰이 일 똑바로 잘 하는지 감시하며 보낸 하루하루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네요. 식구가 12만명이라 그런가요. 경찰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흥미로운 조직입니다. 최근 몇개월 사이에는 경찰의 어두운 과거들을 여러 건 찾아서 보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저녁마다 경찰청 홍보부서 관계자가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해옵니다. “내일 또 뭐 나오나요?” 저는 답하지요. “네, 경찰 돕는 기사 내일도 나갑니다.”

경찰 댓글 공작 의혹, 누리꾼 블랙리스트 운용 의혹, 민간인 사찰 정보보고 청와대 보고 의혹 등 요즘은 날만 새면 경찰의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집니다. 다행히 경찰이 각종 적폐들을 부인하고 발뺌하지만은 않고 즉각 ‘셀프 수사’에라도 착수하고는 있습니다만, 보수 정권 아래서 경찰 내부의 자정 기능이 상당히 마비되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처음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의 누리꾼 블랙리스트 운용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경찰청의 반응은 좀 느긋한 편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살펴봤더니 그런 문건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는 식이었지요.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보안사이버수사대 관계자가 군 사이버사령부를 오가며 부적절한 일을 한 정황이 경찰이 아닌, 군의 조사 결과로 드러났지요. 그제야 경찰은 당혹했습니다. 진상조사 책임을 맡은 한 경찰청 고위 간부는 “(직원들이) 어떻게 대놓고 나를 속이냐”며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죠. ‘경찰 조직은 윗선 보고도 속이고 통제가 안 된다는 건가’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뒤늦게 수사단을 꾸려 댓글 공작 의혹을 수사 중입니다.

경찰의 ‘셀프 개혁’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은 이번주 정보 경찰들을 취재하며 더욱 굳어졌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우리나라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범죄 정보가 아닌 일반 국민의 각종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이건 분명 사찰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경찰서장이 저녁에 누구를 만나러 가요. 그러면 정보과 형사들이 ‘그 누구’의 뒷배경을 조사해 서장에게 보고합니다. 정부가 어떤 중장기 대책을 발표하면, 그에 대한 여론 동향을 조사해 청와대에 보고합니다. 경찰은 이걸 ‘예방적 치안 정보’라고 부릅니다.

정보과 형사들이 과거 세월호 유족의 집회를 따라다니고, 방송인 김미화씨의 라디오 방송 대본 따위를 입수하러 다녔던 게 다 저 ‘예방적 치안 정보’ 때문이란 설명인 거죠. 제가 직접 미국·영국·독일 등 민주주의 선진국의 정보 경찰 업무 연구자료를 살펴보니, 경찰이 제 나라 국민을 사찰하듯 살펴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특별고등경찰 제도가 현재 경찰 정보과의 뿌리라서 그럴까요.

경찰청 내 정보경찰개혁소위원회가 요즘 활동 중인데, 최근 ‘정보국을 폐지하고 범죄 정보만 수집하라’고 경찰에 제안했답니다. 그런데 경찰의 반발이 무척 거세요. 지난 몇개월간 이런저런 경찰 개혁 관련 내부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 강한 기류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정보가 곧 조직의 힘’이라는 속내 탓이지 않을까요.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정보수집 권한까지 갖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예요. 수집된 정보를 기반으로 수사에 나서는 게 아니고, 수사를 하기 위해 특정 누군가를 신상털기 하듯 정보를 수집할 수 있거든요. 여러분이 범죄와 연관도 안 됐는데 전국 3천여 정보 경찰이 ‘한겨레 독자 누리꾼 리스트’ 따위를 만들어 놓고 상시 살핀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웬 ‘판옵티콘 경찰국가’랍니까.

한겨레

이런 상태로라면,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경찰의 수사권 확대를 마냥 편들어주기 곤란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저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편입니다. 검찰과 경찰이 서로 대등하게 국민을 위해 성역 없는 수사 경쟁을 해주길 바라거든요. 하지만 여기엔 전제 조건이 있어요. “경찰, 수사권 갖고 오기 전에 먼저 개혁부터 잘하셔야 합니다!” 경찰이 수사권이라는 단물만 빨아먹고 몸집만 커지는 ‘공룡’이 되지 않도록 기자들이 집요하게 경찰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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