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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검찰 수사로 무능 확인했는데 ‘세월호 7시간’ 실체가 없다고?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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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조선일보-한국당 “세월호 7시간 실체 없다” 주장

루머가 문제가 아니라 루머가 퍼지게 된 원인을 봐야

검찰 수사발표 내용이 ‘세월호 7시간’의 실체

‘세월호 7시간’ 이후의 ‘세월호’ 논의도 중요


한겨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세월호.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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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진실이 밝혀졌다. 이제는 농단 주범이 책임을 말해야 한다.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의혹 수사결과 발표에 경악한다. 검찰은 7시간 의혹엔 실체가 없다고 발표했다.”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검찰이 이 의혹에 대해 제대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28일 세월호 보고 시간 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두고 여러 가지 억측과 음모론이 많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3월29일치 기사 문 정부 검찰 “성형 시술·굿판… 세월호 7시간 괴담 실체 없다”

안녕하세요 ‘더 친절한 기자들’의 이재호 기자입니다.

세월호 침몰 4주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봉인이 풀렸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28일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보고 및 지시시각을 조작해 국회 답변서 등 공문서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대응은 총체적 난국이었고, 추후에 이를 은폐하기 위해 갖은 수를 써 조작에 나선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검찰은 수사결과발표 자료를 통해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첫 보고 및 지시는 모두 골든타임이 지난 후에 이뤄졌고, 이후 보고도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늑장 부실 대응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조작하고, 청와대가 재난상황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취지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불법으로 변개한 경위를 확인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 했다”고 명시를 했습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다수 언론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이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드디어 “세월호 7시간이 얼굴을 드러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참고기사: 베일벗은 ‘세월호 7시간’…최순실, 당일 청와대서 대책회의)

그런데 모든 언론이 이러한 내용을 보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수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7시간 괴담 실체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자유한국당 홍지만 대변인은 “검찰은 7시간 의혹엔 실체가 없다고 발표했다”고 밝혔습니다. 홍 대변인은 한술 더떠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일삼았던 세력에게 참회와 자숙을 요구한다. 현재의 야당 뿐 아니라 시민단체, 소위 좌파 언론을 포함해 7시간 부역자는 모조리 석고대죄 해야 한다. 세월호 7시간을 원망하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논평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수사결과 발표를 두고 이렇게 다른 내용의 보도와 논평이 나올 수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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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신항에 좌현으로 누운 채 거치된 세월호 선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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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7시간’이 실체가 없다…인과관계 오류

보수 진영에서 ‘세월호 7시간’이 실체가 없다고 밝힌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는 당시 세월호가 침몰한 뒤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시간 동안의 행적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특정 인물과 밀회를 가졌다”, “성형 시술을 받으면서 프로포폴 주사를 맞아 자고 있었다”, “청와대 내 안에서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등)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해당 의혹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지난 4년이라는 시간동안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 언론이 알고 싶었던 것은 박 전 대통령의 밀회나 시술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304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재난이 발생해 전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고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 자료에도 명시했듯 ‘헌법상의 행정수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아닙니다.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자연인 박근혜와 다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법적 지위와 역할에 따라 당일의 행적을 소상하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의무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서 각종 루머가 떠돌았던 것입니다.

검찰의 수사결과로 드러났듯 당시 늑장대응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까지 불법 조작한 사실은 비판하지 않고 ‘루머가 맞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하면서 시민과 언론을 비판하는 건 인과관계를 잘못 이해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특히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의 경우에는 최고행정책임자인 피청구인은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수행을 위하여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여야 한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10:00경에는 시급히 출근하여 청와대 상황실에서 상황을 파악, 지휘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피청구인은 그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다른 이유 없이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다음에서 살피는 것처럼 원론적인 지시를 하였다.

김이수·이진성 헌법재판관의 탄핵심판 보충의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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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헤대통령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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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발표 내용이 ‘세월호 7시간’의 실체

‘세월호 7시간’의 실체는 명징합니다.

이번 검찰의 발표를 통해서 추가로 드러난 ‘세월호 7시간’의 실체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늑장대응 책임을 면하기 위해 서면보고를 20분 앞당겨 조작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박 전 대통령이 실제로는 오후와 저녁에 두차례 서면보고를 받았지만 총 11번을 받았다고 보고 횟수를 부풀렸습니다.

셋째는 가장 충격적인 사항인데요. 청와대 참모들이 아닌 최순실씨와 함께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방문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회의 뒤에 ‘올림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렀습니다. (▶관련기사: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침실→최순실→올림머리→중대본 방문)

검찰 수사결과 발표 중 ‘세월호 사고 당일 타임테이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오전 9시24분 “위기관리센터 상황팀원이 청와대 문자발송 시스템으로 사고 사실을 전파했다”는 내용입니다. 구조의 골든타임으로 분석됐던 오전 10시17분까지는 50분 여가 남아 있었던 상황입니다.

만약 이 문자메시지를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출근한 상태에서 확인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대통령이 그때에만 알았더라도 컨트롤타워를 최소 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안전행정부 산하의 해양경찰청 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범부처를 동원한 구조작업에 나섰을 거라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침몰하던 세월호를 막을 수는 없었더라도 최소한 소중한 생명을 몇명이라도 더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박근혜 청와대도 세월호 참사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부분이 문제였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인호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은 2014년 7월31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지시에 따라 지침 3조에 명시된 “국가안보실이 재난 상황의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내용을 지우고 ‘국가안보실은 국가위기 상황에서만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취지로 바꾸는 등 10개조 14개항을 무단 수정했습니다. 김장수 전 실장이 2014년 4월23일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짜맞춘 겁니다. 세월호 참사는 ‘재난 상황’이었음에는 틀림 없지만 ‘국가위기’로 보기는 애매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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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를 주제로 20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월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문화 공연을 즐기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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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7시간’ 이후의 ‘세월호’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비서실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메일로 총 11차례 상황보고를 전했지만, 정 비서관은 이를 일괄 출력해 오후와 저녁 두 차례에 나눠 전달했습니다. 그날 비서실장도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 대면보고를 못했다고 합니다. 서면보고를 선호하는 박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관련기사: 이번에도…박 대통령에 ‘대면보고’ 전혀 없었다/ 박 대통령, 메르스 ‘일대일 대면보고’ 받은적 없어)

검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을 조사해 보니 ‘대통령 보고가 통상 그래 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습니다. 국민의 안전에 큰 위협을 가하는 사건 앞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서면보고를 고집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는 빠른 시간 내에 대면보고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일본처럼 총리의 그날 일정은 분 단위로 보고하는 시스템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총리의 하루’는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날마다 실리는데, <교도통신> <지지통신> 담당 기자가 직접 관찰한 사실과 총리실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대통령의 7시간, 그 기괴함에 대하여)

‘세월호 7시간’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의 논의는 이제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 특조위, 2기 세월호 특조위)가 이러한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건설적 논의를 위해 머리를 맞대 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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