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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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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동반성장 없이는 한국 경제에 미래가 없다. 동반위의 역할은 동반성장이라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향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 22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실. 차 한잔을 마주하고 앉았지만 권기홍 동반성장위원장(69)은 마시지 않았다. 목소리에 많은 고민이 묻어났다. 2010년 12월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그 해법으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 지난 2월 취임한 권 위원장이 제4기 위원장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오히려 더 양극화가 심화된 녹록지 않은 현실이 놓여 있다.

그동안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동반성장지수 평가 등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그 열기가 점차 식고 있다. 오히려 최근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로 다시 사회적 갈등이 시작됐다.

권 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말로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대기업 편중의 경제구조, 청년실업, 인구절벽 등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해법은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라고 덧붙였다.

"저출산, 청년실업, 중산층 붕괴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위기는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으로 종합될 것입니다. 2027년이면 총인구가 감소하게 됩니다. 우리 경제가 절벽에 떨어지기 전에 멈춰 서려면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그 핵심이 바로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는 일입니다."

―동반성장위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정부의 동반성장에 대한 인식 강도가 약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동반위도 일을 벌이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동반위 자체 역량도 충분하지 못했다. 이번 정부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를 내세우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지금처럼 현격하게 벌어진 적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문제 인식을 갖고 있기에 산업 정책을 입안하는 각 부처에 동반성장 문화를 확산할 것이다. 앞으로 동반위가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위원장으로서 가장 중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

▷대·중소기업 간, 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임금격차로 수렴될 것이다. 이를 위해 대·중소기업 간, 정부와 기업 간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면 동반위에 대한 기업들 신뢰도가 올라가고, 강한 신뢰가 합의를 이끌어내는 선순환을 하게 될 것이다. 대·중소기업이 손을 잡으면 모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중재자 역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동반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또 중소기업 안에서도 서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상호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정부에도 이를 전달하는 등 일종의 중재자로서 동반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업무를 단순히 명문화된 적합업종 지정이나 동반성장 지수 평가 같은 항목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해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겠다.

―참여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역임해서 동반성장위원장으로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매일경제

▷(동반성장위원장) 내정 소식을 듣고 '이게 내 팔자인가' 싶더라. 사실 동반성장위원장은 노동부 장관과 흡사한 측면이 많다. 장관 시절에 두산중공업, 화물연대, 발전노조, 코레일 등 줄줄이 파업과 노사 갈등이 극심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현장까지 가서 직접 중재한 것에 대한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갈등 당사자 간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필요성을 당시에도 느꼈고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경험을 많이 했다. 대·중소기업이 단기적으로는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봐서는 손잡고 뛰어야 한다. 과거 노동부 장관의 경험을 잘 활용할 것이다.

―지금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를 놓고 충돌이 있다.

▷(적합업종에 대한) 정부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관련 업체 간 합의가 유효하다면 굳이 규제가 아니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다만 생존권에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법제화에 반대하기 어렵다. 법제화가 되더라도 동반위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계형'을 어느 업종까지 볼 것인가 의미가 불분명하다. 이런 분류에 대해 업계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게 될 것이다.

―동반위에서 추진하는 협력이익배분제는 초창기 주창한 초과이익공유제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초과이익공유제는 이름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사실과 다른 비판을 받으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꾼 게 협력이익배분제다.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라 현장에 가면 성과공유제와 혼용돼 이미 사용 중이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준비를 많이 하고 있고 구체적인 '한국형 모델'이 제시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협력이익배분제 도입을 촉구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 오히려 2·3차 협력사가 더 문제인 것 같다.

▷대기업들은 상생에 대한 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이고 있지만 아직 동반성장의 온기가 2·3차 협력업체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2·3차 협력기업으로 동반성장 노력이 확산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기업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납품단가 현실화, 지불 기간 축소, 불공정한 거래관행 폐지, 계약문화 선진화 등을 추진하고자 한다. 특히 자금 순환을 위해 도입한 상생결제제도 확대에 노력 중이다.

―상생결제 활용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상생결제제도는 거래기업(1차 이하 협력사)이 결제일에 현금 지급을 보장받고, 결제일 이전에도 대기업·공공기관(구매기업)의 신용으로 조기 현금화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생결제가 대부분 1차 협력업체에만 머무르고 후순위 업체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상생협력법' 개정을 통해 상생결제로 납품대금을 받은 경우 그 비율만큼 2·3차 기업에 상생결제로 지급을 의무화하고 1차 협력사에 세액공제 상향, 정부사업 신청 시 가점 부여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청년실업과 정부 일자리 대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청년실업 문제는 내가 젊었을 때도 있었다. 독일에 유학 가서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시와 농촌, 능력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똑같을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수준이 벌어지지 않더라. 오히려 대기업에 간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중소기업에 간다는 사람은 많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히든챔피언이다. 이런 구조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말 그대로 일자리 문제가 시급하니까 단기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본래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급하니까 정부가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겨보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단기 대책만 있다고 비판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대기업의 상생기금 출연이 쉽지 않은데.

▷최근 기금 출연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반영해 이사회 승인 등 내부 의사결정 절차가 강화됐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1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2·3차 중소협력사를 지원하기 위해 상생협력기금 500억원과 대출펀드 1000억원을 운영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2017년 상생협력기금이 1571억원으로 2016년(1500억원)보다 소폭 증가했다.

올해부터는 대기업 등 상생협력 활동에 대해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가 신설되고, 상생협력기금의 법인세 공제율도 기존 7%에서 10%로 상향되는 등 제도적 장치가 더욱 갖춰져 도입 취지가 충분히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유학시절 기업 생태계에 눈떠…나는 중도우파

매일경제

대구 태생인 권 위원장은 환경도시로 유명한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서울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해 독일로 유학을 갔고 밥벌이가 될 것 같아 경제학으로 바꿨을 뿐"이라고 웃었다. '밥벌이'를 위해 떠난 독일 유학은 그의 세상 보는 눈을 바꿨다.

그는 "프라이부르크대의 경제학적 성향은 자유주의인데 그들이 말하는 자유주의는 바로 질서자유주의"라며 "시장의 구조는 사회가 만들어줘야 하고 그 속에서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스스로를 '중도우파'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세간에서 그를 진보적인 학자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부정하지도 않았다.

중소기업 정책도 독일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독일에서 중소기업을 '미텔슈탄트'라고 하는데 슈탄트는 신분이라는 뜻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중산층'으로 번역할 수 있죠. 독일은 중소기업을 중산층이라는 계층으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중소기업 정책의 해법도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사회의 중산층으로 만들어야 경제적 위기에서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처럼) 소득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열심히 살면 된다'는 가능성을 갖게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참여정부 때 노동부 장관, 문재인정부에서는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을 만큼 두 명의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대구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부산 선대본부장이었죠. 경남 선대본부장은 김두관 전 장관이었는데 이렇게 우리 셋은 서로 모여 의논도 하고 특단의 대책을 만들어 노 후보에게 건의도 하고 꽤나 죽이 잘 맞았습니다. 세 곳 모두 지지 기반이 약한 지역이라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이후 권 위원장은 노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위원장)를 맡았고, 참여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에 올랐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노동계 파업이 확산하면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문 대통령과 손발을 계속 맞춰왔다. 이런 인연으로 2012년 대선 때도 문 대통령의 당내 경선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 외곽 조직인 더불어포럼 공동대표, 민주정부 10년 장차관 모임인 '10년의 힘' 위원, 정책 싱크탱크인 포용국가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권기홍 위원장은…

△1949년 대구 출생 △경북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경제학 박사 △영남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복지법인 더불어복지재단 이사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문화여성분과 간사(2002년) △20대 노동부 장관 △14대 단국대 총장

[대담 = 전병득 중소기업부장 / 정리 = 안병준 기자 /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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