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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미·유럽, 러 외교관 추방 '강경 보복' 이유는…공동 견제? 미 안보라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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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서방세계에서 완전히 추방되고 있다. 러시아가 영국에 망명해 있던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독살 시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영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 20여 개국이 130여 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러시아에 대규모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크림반도 합병 당시 서방국가가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이후 가장 강력한 제재다. 이는 최근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을 통한 정보전, 극단주의 정치세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감에 따라 유럽과 미국이 단결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미국 안보라인이 ‘강성’으로 바뀐 영향이라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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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룸버그


◇ 크림반도 합병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제재…서방국 ‘단결’로 러시아 ‘견제’

26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이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하고, 시애틀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을 폐쇄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유럽 십여 개국을 포함한 20여 개국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캐나다와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도 제재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이중간첩 독살 시도 사건으로 총 137명의 러시아 외교관이 추방된다.

러시아 이중간첩 독살 시도 사건은 지난 4일 영국 솔즈베리에서 러시아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66) 부녀(父女)가 독극물에 중독돼 의식을 잃은 사건이다. 검출된 독극물 ‘노비촉’이 옛 소련에서 개발된 화학무기로 밝혀지면서 영국 정부는 러시아에 책임을 물어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했다.

이와 같이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단결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대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미국과 유럽이 대(對)러시아 제재조치를 가한 이래 가장 심각한 외교적 위기”라고 분석했다.

서방세계가 간만에 나서서 단결력을 과시한 것은 최근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러시아의 힘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BBC는 최근 러시아의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격을 통한 정보전과 극단주의 정치세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단결해야 하는데 영국 이중간첩 독살 시도 사건이 그 계기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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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8년 3월 23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2018회계연도 예산안 서명 관련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블룸버그


◇ 美, 예상보다 강력한 러시아 제재…외교·안보라인 개편에 따른 변화

이번 서방국가들의 대러시아 제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의 움직임이었다. 러시아와의 불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가장 많은 규모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러시아 외교관 추방 규모(60명)는 당사국인 영국의 보복 수준(23명)을 뛰어 넘었으며, 1986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추방한 러시아 외교관 수(55명)보다 많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내 미국 외교·안보라인이 개편되면서 이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기용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내정자는 대외 정책에 강경한 매파다. 이들의 관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BBC는 “두 사람 모두 이란과 북한 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생각이 거의 일치하지만, 폼페이오 내정자는 CIA 경력 덕분에 러시아 스파이 활동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으며, 볼턴은 오랫동안 러시아에 강경한 입장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와 내통 의혹을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결백함을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에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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