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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아베와 이명박 그리고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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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 23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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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결국 구속됐다. 이 전 대통령은 4번째로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직선제 전직 대통령 중 보수 진영 전직 대통령은 전부 구치소나 교도소에 갔거나 수감돼 있다. 전직 대통령의 말년이 한결같이 비극적이다.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정치권이 몸살을 앓는 나라가 또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현재 권력의 부정부패 의혹이고 우리는 과거 정권의 부정부패 의혹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사학 스캔들 때문에 엄청난 위기에 몰려 있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이 특혜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가격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된 이른바 ‘아키에 스캔들’은 문건 위조 의혹으로 번졌다. 아키에 스캔들 의혹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 문건 조작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아베 총리 지지율은 30%까지 떨어졌다. 이 정도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조만간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질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도 점입가경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인가에서 시작한 이번 사태는 MB가 불교 성직자에게 당선 축하금을 요구하고 3억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다른 종교계 혹은 다른 분야에도 당선 축하금을 요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게 사실로 밝혀지면 MB는 법적으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될 터다.

MB 사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스 문제가 결국 2007년 대선의 정통성과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댓글 문제 등으로 보수 정권의 정통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환경인데 다스와 BBK의 실소유주가 MB로 밝혀지면 당연히 보수 정권이 승리했던 대선의 정통성에 의문부호가 달릴 수밖에 없다. 보수 정권 성립 과정의 정통성은 치명상을 입게 될 테고, 현재 보수 세력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당분간 대한민국 정치 지형은 한쪽 날개로 나는 새의 모습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부패 스캔들에서 권력형 스캔들이라는 것 말고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비리 스캔들에 권력자 친인척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부패론(theory of corruption) 측면에서 설명하면 친인척이 권력형 부패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주로 유교 영향을 많이 받은 국가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가족주의에 입각한 네포티즘(Nepotism) 때문이다. 과거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YS, DJ 정권에서는 대통령의 아들이 부정과 부패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대통령의 형이 부패 의혹의 중심에 있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당시 유행하던 ‘만사형통’이라는 단어만 봐도 누가 부정과 부패의 중심에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의 아키에 스캔들도 전형적인 권력형 친인척 비리다.

문제는 최고 권력자에게 권력까지 집중될 경우 이런 종류 부패의 발생 빈도수와 부패 정도가 더욱 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권력구조 아래에서는 이런 권력형 부패를 응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기까지 사건이 불거진 후 근 1년이 소요됐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잃어버린 1년이나 다름없다.

반면 일본 같은 내각제에서 권력형 비리가 발생하면 총선을 다시 실시해 권력자를 권좌에서 몰아낸다. 아베 정권 지지율이 30%를 밑돌면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다시 해 새로운 총리가 등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벌써 아베 이후 인물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이런 시나리오는 조만간 현실이 될 것 같다. 한마디로 부패 유형이나 심각한 정도는 유사하지만 문제 해결 방식은 우리와 일본이 너무나 상이하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내각제를 하는 일본은 정권 위기가 국가의 위기가 되지 않는 반면, 우리 같은 대통령제는 정권의 위기가 곧바로 국가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권력구조에 따른 권력의 집중 정도 그리고 헌법에서 권력자 임기를 보장하는지 여부가 정권 위기가 국가 위기로 전이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런 이유에서 박근혜 정권 몰락 직후부터 우리는 개헌을 말해왔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야만 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고 이때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거론되는 개헌안을 보면 권력구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청와대가 발표한 개헌안을 보면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우선 눈에 띈다. 한마디로 잘못한 국회의원 임기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제도다. 동의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임기 보장이라는 것이 ‘임기 내에는 안심하고 할 짓, 못할 짓 다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정치사를 보면 이런 식의 해석과 사고구조가 국회의원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지 않다. 최고 권력자 역시 임기 보장으로 인해 임기 동안 자신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스스럼없이 해왔다. 대통령 임기는 헌법 사안이기에 임기 동안은 ‘대통령과 친인척, 그리고 측근들’이 마음 놓고 ‘뭔가’를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가 태생적으로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점까지 더해지면 이 같은 비극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청와대 개헌안을 보면 대통령제를 계속하겠단다. 그것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8년이나 권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바꾸겠다고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의원내각제는 국민이 싫어하기 때문에 4년 연임 대통령제를 하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논리를 편다. 동시에 지금처럼 국회와 정치권이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인 것 같다. 국회와 정치인은 우리나라에서 불신의 대상, 아니 불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각제를 하는 유럽 선진국 정치인들은 모두 국민적 선망의 대상 혹은 국민적 존경의 대상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선진국에서도 정치인은 대부분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다. 동시에 비난의 대상이다. 유럽 상황도 이렇다고 할 때, 청와대와 여당 주장대로라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 역시 내각제를 하면 안 된다.

여기서 우리의 낮은 정치 수준을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맞다. 유럽에 비해 우리 정치권의 제도적 마인드는 아직도 미약하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내각제를 하는 국가에서 최고 권력자인 수상과 의원들은 임기를 못 채우고 수시로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수상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모든 정치권 인사들이 자신들의 임기를 채우기 위해 여론에 상당히 민감하고 유권자 눈치를 본다. 정치학적 용어로 반응성이 상당히 높아진다는 말이다. 또한 국민은 문제 있는 정권 혹은 정치인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갈아치울 수 있어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진다. 이때 국민소환제라는, 대의민주주의와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제도를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치판도 바뀐다. 정치판이 바뀌고 나서 내각제를 생각해보자는 논리보다, 내각제를 통해 정치판을 바꾸자는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점은 내각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거의 대부분 잘사는 나라인데 이들 나라가 내각제를 권력구조로 갖게 된 이유가 정치판이 깨끗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내각제라는 반응성 높은 정치 제도를 도입해 정치 수준을 높이고 이를 통해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왜 못사는 나라들이 대부분 대통령제를 권력구조로 갖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올 법하다. 편견을 버리자. 눈을 외국으로 돌려 장기적 관점에서 권력구조를 생각하자. 그래야만 백년지대계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개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1호 (2018.03.28~2018.04.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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