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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과학을 읽다]만리장성 지탱한 '찹쌀몰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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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금의 만리장성은 14세기 명나라 때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린 것이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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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만리장성(萬里長城)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인류의 문화유산입니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진(秦)시황(始皇)이 흉노(匈奴)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했던 그 만리장성이 아닙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것은 기원전 221년이었고, 만리장성 축조가 시작된 해는 기원전 214년입니다. 그 당시 쌓았던 성은 춘추전국시대 각 나라가 만든 북방의 요새와 성벽을 연결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진나라의 멸망 후 만리장성은 한(漢)나라 때 다시 확장되고, 5세기 남북조시대에 와서야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습니다. 만리장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4세기 명나라 때입니다.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은 멸망 후에도 계속 남쪽을 넘보며 침범해옵니다. 이에 명나라는 아예 성벽을 허물 수 없게 돌을 다듬어 단단하고 높게 다시 쌓아 올려 수백년을 버티는 제대로 된 성을 만듭니다.

장성이 수백년을 버티도록 하기 위해 당시 중국인들은 돌을 벽돌처럼 깎아 반듯하게 만드는 것과 함께 '찹쌀몰타르'를 사용합니다.

지금의 몰타르(mortar)는 시멘트와 모래를 배합해 만들지만 고대 문명에서는 비교적 무른 돌인 석회석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개서 만들어 썼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흙이나 돌가루에 수수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만든 찹쌀몰타르를 돌 사이에 바르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흙이나 석회(돌가루)에 중국인이 아침 식사로 먹는 쌀죽과 같은 성분을 첨가해 몰타르를 만든 것입니다. 이 방식은 지금 만리장성의 위치를 잡은 5세기 남북조시대부터 사용됐습니다. 중국 중부 허난성 지역에서 발견된 당시의 석굴묘에서도 이런 몰타르가 발견됐고, 17세기인 명대 말기쯤 제작된 산업백과사전 '천공개물(天工開物)'에 제조방법도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찹쌀몰타르는 송·명·청나라 때도 계속 사용됐는데 효과가 뛰어나 1604년 명나라에 강도 7.5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찹쌀몰타르를 사용해 지은 건물이나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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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을 쌓은 돌 사이에 바른 하얀색 몰타르(왼쪽 아래편 성벽 참조)는 찹쌀가루를 섞은 '찹쌀몰타르'다.[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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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중국의 연구진이 난징시를 둘러싼 만리장성의 성벽에서 몰타르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찹쌀몰타르가 지진 등 외부의 충격에 물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일반 석조물보다 더 하중을 잘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 당국은 고대 문화재 복원에도 찹쌀몰타르를 사용해 뛰어난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1000년 전 송나라 때 만들어진 허난성의 쇼우창 다리(壽昌橋)는 아름다운 석조 아치형 다리지만 오랜 세월 지반 약화 등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합니다. 중국은 2006년 찹쌀몰타르를 사용해 석재들을 접착시켜 원 구조물보다 더 튼튼한 다리로 복원합니다.

만리장성의 실제 길이는 원래 6352㎞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2009년 8851㎞로 늘리더니 2012년에는 2만1196㎞라고 발표합니다. 중국 정부 주장대로라면 1리가 400m 정도니 '오만사천리장성'이 됩니다.

지금까지 성벽이 남아 있는 구간은 20%도 안됩니다. 여기서 더 늘어난다면 정말 명칭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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