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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평균은 없다, 개성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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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평균 체격 조각상 '노르마'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허상

"이제는 개인의 특성에 눈떠야"

평균주의 역사 추적한 토드 로즈

주의력 결핍으로 고교 중퇴했지만 잘하는 일에 집중해 하버드 교수로

조선일보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지음|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324쪽|1만6000원

"이상적 신체를 지닌 미국 여성을 찾습니다!" 1945년, 미국의 지역 신문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는 클리블랜드 건강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여성 전신상 '노르마'와 신체 지수가 가장 가까운 여성을 뽑는 공모 대회를 열었다. '노르마'는 부인과 의사 로버트 디킨슨이 수천 건의 자료로 평균을 산출해 만든 작품이었다. 그 평균이야말로 미국 여성의 '정상 체격'을 판단하는 데 유용하리라는 신념의 산물이었고, '노르마'와 닮지 않은 여성은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조언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대다수 참가자의 신체 지수가 평균치에 근접해 승부가 밀리미터 단위로 아슬아슬하게 갈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어 보자 완전히 빗나갔다. 9개 항목의 치수 중 5개 항목에서 평균치에 든 여성은 3864명 중 40명도 되지 않았고, 9개 항목 모두 평균치에 가까운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노르마', 그러니까 '평균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

교육신경과학자이자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저자 토드 로즈는 이 책에서 숱한 사람들이 의심을 지니지 않고 진리처럼 떠받드는 '평균'의 신화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로즈 자신이 고교 시절 낮은 성적과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판정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가까스로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평균'에 따르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해 인생 반전을 이뤘다.

조선일보

미국 여성의 평균 신체 치수를 바탕으로 만든 조각상 '노르마'. /21세기북스


로즈는 사람들에게 단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평균주의의 역사를 추적한다. 1840년대 벨기에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천문학의 방법론을 인간에게 도입해 평균적인 인간을 '완벽한 유형'으로 삼았고, 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이 방법을 응용해 인류를 계층화했다. 1890년대 미국의 기술자 프레더릭 테일러는 평균을 응용한 방법을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산업 공정의 오류를 최소화하자는 '표준화'를 들고 나왔으며, 20세기에 이르러 테일러의 시스템을 학교 교육에 도입하자고 주장했던 미국 교육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의 의도가 현실에서 관철돼 갔다.

오래도록 학교와 군대, 정부와 기업에서 사람들은 '모두에게 통용되는 한 가지 잣대'로 줄서기를 강요당해 왔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타당한가? 1940년대 전투기 추락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미국 공군은 '평균에 맞춘 조종사 좌석은 결국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절이 가능한 좌석을 개발했다. 이 좌석은 오늘날 모든 자동차 좌석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개개인을 시스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개인에 맞추다 보니 훨씬 더 편리해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제 로즈는 '평균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사람의 신체 수치나 능력은 분야마다 다르다는 '들쭉날쭉의 원칙', 집에서 내성적인 학생이 학교에선 외향적인 식으로 같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맥락의 원칙', 모두가 같은 속도와 같은 방식으로 진로를 택할 필요는 없으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경로의 원칙'이다. 나아가 일률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대학 학위를 따는 방식 대신, 학생이 선택해서 필요한 과목만 수강할 수 있는 자격증 체제로 바꾸자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한다.

이 책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조직'과 '단체'에 짓눌린 채 '평균 이상'이 되기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해 온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평균주의는 지나가 버린 산업화 시대에 유효했던 방법일 뿐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다. 평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개개인의 특성에 대해 새로 눈을 뜬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명적 변화인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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