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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박근혜·MB 몰락, 박정희식 독재·개발 패러다임’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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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근혜 당선은 아버지의 후광

이명박 불도저식 경제 전횡

국민도 성장 지상주의에 기울어

결국 인권탄압·환경파괴로 귀결

“적폐청산 끝 아닌 시작이 돼야”



대한민국이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불행한 헌정사를 다시 썼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그리고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네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치소와 감옥에 갇혔다.

23일 우리 사회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상황을 차분하고 질서 있게 감당하고 있다. 이날 하루 누리꾼들은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 등의 소회를 쏟아냈다. 이 전 대통령 구속을 앞두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예닐곱은 “구속 수사 찬성” 의견에 손을 들었다.

시민들의 이런 반응은 이 전 대통령 구속이 표면상 개인이 저지른 비리 혐의로 벌어진 일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정의 바로 세우기’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폐기’ ‘민주주의의 회복’ 등의 가치가 담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징후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논현동 골목에 ‘정치보복 중단’ 같은 이 전 대통령의 주장 대신 시민들이 내건 ‘국정농단, 사자방 비리 원흉, 엠비 구속’ 같은 펼침막이 보여주는 풍경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시 몰락은 단순히 개인에게 가하는 법의 응징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유령처럼 감싸온 ‘박정희식 패러다임’ 종언의 시발점으로 보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천 전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발독재를 한 아버지의 딸로서 후광효과를 누렸고, 이 전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개발’의 이름으로 후광효과를 누렸다. 이런 점에서 이 전 대통령 구속은 ‘대통령이 도덕성은 부족해도 (내가) 부자만 되면 된다’는 신자유주의적 개발독재 표상이 무너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우리 사회는 박정희 패러다임과 김대중 패러다임이 충돌해왔지만 ‘성장이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박정희식 인식이 이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송두리째 몰락하는 당위성을 보여주게 됐다”고 분석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명박은 청년기인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반대 시위에 참석하는 등 박근혜와는 조금 다른 정치적 결을 가졌었지만 결국 정치적 힘을 가진 뒤로는 박정희를 흉내 냈다. 이명박은 박정희처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고 박근혜가 이어받은 건 선공후사 같은 허상이었다. 이제 우파 박정희(박근혜)와 좌파 박정희(이명박)가 모두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은 우리 사회 ‘욕망의 반영’이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 전에 다스와 비비케이(BBK) 등 여러 의혹이 잇따랐지만 국민들은 거짓의 전말을 눈치챈 채로 이 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다. 이 전 대통령은 ‘과정보다 결말을, 서민보다 재벌을, 인권보다 성장을, 보존보다 개발의 가치’를 앞세우며 비뚤어진 욕망과 가치관을 설파했고 △쌍용차 농성 강제진압 △용산 철거민 농성 강제진압 참사 △4대강 환경 파괴 △민간인 사찰 등으로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 구속은 국가권력의 횡포로 국민주권 포기를 강요당했던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씻김굿’ 노릇을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쌍용차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그의 구속을 간절히 바라왔다. 2009년은 공안정국이었다. 공권력의 폭력으로 인권의 존엄이 짓밟혔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9년의 시간을 살았다. 늦었지만 이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쌍용차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사회적 계기가 마련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용산 유가족·생존자들은 2009년 용산참사 당시부터 책임자인 이명박과 김석기(당시 서울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를 처벌하라고 요구해왔다. 이명박은 이들을 철저히 외면했고, 사과나 언급조차 없었다. 피해자들은 이명박 구속이 용산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청산은 그릇을 비우는 행위이고 비워진 그릇은 다른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은 적폐청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사회는 어떤 시스템과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이 나쁜 사람을 처벌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패해도 우리의 욕망만 채워주면 괜찮다’는 사회적 가치의 폐기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들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뽑아준 건 우리 국민이다. 그런 부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 내부의 욕망이 누군가에게 투사되어 ‘또 다른 이명박’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그 자체로 비극이지만 우리 사회는 비극의 마지막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과거 정권이 잘못을 반복해 국민이 촛불로 응징을 하면 다른 정치세력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 의문이다. 또 자유한국당은 과거 정권의 책임을 지고 몰락해야 정상인데 여전히 제1야당이고 당대표 등이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거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에게 ‘이명박을 조심하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정보공개 누리집 ‘위키리크스’에서 2007년 서울발 외교전문으로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 말을 “엠비를 돌봐주라”는 말로 잘못 들었고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에서 고속 승진한 바 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는 미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를 ‘운 좋은 전환’이라고 명시했다.

이제 이 전 대통령의 이러한 일화는 또 다른 기시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부패한 정치 지도자를 조심하라’는 경각심을 심어, ‘사회 가치 전환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직 대통령들이 부패로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은 좀더 냉정하고 분별 있게 투표하는 게 중요하다는 학습효과를 가졌다.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치른 이번 민주주의 학습이 미래의 투표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비위를 인지하고도 오랫동안 눈감은) 검찰 등 권력기관도 석고대죄해야 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재현 고한솔 선담은 신민정 송경화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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