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7 (금)

[인터뷰]'일베'에 맞선 래퍼 빅사이즈 "비겁한 아티스트 되지 않을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메트로신문사

래퍼 빅사이즈/스파이시트러블


[인터뷰]'일베'에 맞선 래퍼 빅사이즈 "비겁한 아티스트 되지 않을 것"

이 래퍼, 참 뚝심있다. 치열하다 못해 과격하기까지 한 최근의 한국 힙합 문화에 때로 아쉬움도 들었던 터. 소신 하나로 뚝심있게 자기 갈 길 걸어가는 이 행보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름은 빅사이즈. 대중에겐 조금 낯설지만 사회 곳곳의 약자들에겐 익숙한 인물이다. 촛불집회 현장부터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곳은 전국을 마다하고 달려가곤 했다.

최근 메트로신문과 서울 모처에서 만난 빅사이즈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만담꾼'을 떠올리게 했다. 때때로 정제되지 않은 멘트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지만 묵직한 진심을 전하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미디어를 통해 보기 어려웠던 그가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장장 10년 이상의 공을 들인 정규앨범이 올해 공개되기 때문.

빅사이즈는 더 넓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보이게 된 이유에 대해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장치는 많다고 생각했다. 곡과 가사를 쓰고,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감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보면 이중적이었던 거죠. 사람들이 많이 들어주길 바라면서도 더 넓은 허브로 나아가는 건 지양하고 싶었달까요. 그러다 최근에 깨달았어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있는데, 혼자서 계속 허공에 메시지를 던지는 건 좀 아닌 거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메트로신문사

래퍼 빅사이즈/스파이시트러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음지와 양지를 고루 넘나들며 활동도 이어왔다. 향후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예정된 상황.

그러나 솔로로서,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은 이번 정규 앨범이 마지막인 만큼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는 "성격상 또 다른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또 10년이 넘게 걸릴 거다. 그래서 아마 이 앨범이 제 솔로 앨범으론 마지막일 것"이라며 "이번 앨범은 2CD 분량이다. 17살 때부터 써온 트랙이 모두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앨범이 나오는 시기는 올 가을에서 겨울 경. 빅사이즈는 이 앨범에 대해 "책 같은 음악이 담긴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다의적이고 중의적인 메시지를 담았어요.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처럼, 그런 음악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일상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한, 제 자서전 같은 앨범이에요."

2CD 분량의 꽉 찬 정규 앨범. 현 가요계의 흐름과는 상반되는 행보이기에 이 같은 선택에 궁금증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꼭 필요한 이들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빅사이즈는 "일상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분들이라면 이 앨범을 들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자극적인 메시지, 후크 같은 것들이 범벅되지 않은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 한 명의 관객, 팬이 있다면 그를 위한 공연을 펼치겠단 각오다. 그는 "쇼케이스를 생각하고 있다. 폭넓은 사람들과 만나 진행해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팬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쇼케이스를 할 거다. 혼자서도 몇 시간씩 공연할 수 있기 때문에 오시면 재미는 있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메트로신문사

래퍼 빅사이즈/스파이시트러블


빅사이즈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에 큰 욕심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중이 많이 알아주길 바라고, 하지만 대대적인 홍보 활동은 다소 지양하고 싶어했다.

어쩌면 모순 같은 이야기들이다. 유명하고 싶진 않지만 많은 이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건 판타지에 가까운 얘기 아닐까. 그럼에도 어쩐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에게서 진한 아날로그의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찾아 듣는 음악'이 트렌드가 된 지금, 그는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빅사이즈의 행보와 음악 간의 간극과도 참 닮아있다.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시위 앞에서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펼쳤던 그가 또 다른 곳에선 풀뿌리 같은 사람들의 곁에 남아 동조의 뚝심을 보여주곤 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삶의 이중성처럼, 사람 냄새를 짙게 풍긴다.

음악은 빅사이즈가 세상과 소통하는 단 하나의 통로다. 그는 "운동을 하루 거르면 처지는 것처럼 제겐 음악이 그렇다. 음악을 쉬면 바로 티가 난다. 덕후 기질이 있는 거다"고 말했다.

"지금이 참 재밌어요. 사회, 정치적인 메시지를 얘기했을 때 함께 공감해줄 수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는 방향을 수정하고 싶진 않아요. 상업적이든 비상업적이든, 제가 어떤 음악을 하더라도 믿고 재밌어 해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된 이상 음악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메트로신문사

래퍼 빅사이즈/스파이시트러블


가장 사회적인, 그래서 가장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빅사이즈의 주변을 맴돈다. '멋이 없음'을 가장 참을 수 없다던 그는 "비겁한 아티스트는 되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9~10년 간의 시절 동안 아티스트들은 비겁했어요. 기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난 시절의 관성에 젖어있다 보니 말하지 못하고,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얘기해줘야 해요. '우리 20년 전엔 안 그랬잖아' 이런 얘기를 해줘야 문화계든 정치권이든 각성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모든 생각 끝엔 성찰이 있었다. 그는 "아티스트들은 비겁했다. 하지만 그들의 탓만 할 순 없다. 과거 정권이 지원이나 이런 부분에서 가장 먼저 탄압했던 게 문화예술쪽이지 않았나"면서 "이제와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저도 모순적이란 생각을 했었다. 당시에 인터뷰를 요청하고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땐 '내 만족'이란 미명하에 합리화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와 너, 우리 모두를 되돌아본 그는 이제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그는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낼 거다. 다들 홀로 뭔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모여 연합을 할 수 있고, 그런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훨씬 많은 아티스트들이 나설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하철, 버스에서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그 속에 살아 숨쉬는 게 바로 빅사이즈이자 내 모습이다"고 말했다.

삶은 모순이고, 모순이 곧 삶이다. 그렇기에 삶엔 용기가 필요하다. 빅사이즈가 말한 모순 아닌 모순 역시 그 용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그가 또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지만 유쾌한 발걸음이 될 거란 확신이 든다.

김민서 기자 min0812@metroseoul.co.kr

ⓒ 메트로신문(http://www.metroseoul.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문의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