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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히트곡 대신 취향을 팝니다… 음반가게의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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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독립음반점들] [상]

주인 취향 담긴 독특한 컬렉션, 희소가치 있는 음반만 주로 다뤄

'음악 소장 욕구'로 음반점 부활… LP·CD·카세트테이프도 취급

지난 18일 서울 동교동 큰길에서 한 블록 안쪽 골목에 있는 '김밥레코즈'. 8평 남짓한 매장은 LP 2000여 장과 CD 1500여 장이 빼곡히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나 트와이스 같은 아이돌 앨범은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파는 음반은 철저히 가게 주인 김영혁(45)씨 취향. 13년간 다니던 음반 회사를 그만두고 2013년 이 가게를 차린 그는 "내가 싫어하는 음악은 고객 요청이 없는 한 들여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 고집이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음반은 없지만 아무 데서나 살 수 없는 것만 있다"는 소문으로 퍼졌다. 김씨는 "LP를 중·장년층이 주로 찾을 것 같지만 주 고객은 새로운 음악을 찾는 20~30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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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교동 뒷골목 ‘김밥레코즈’ 8평 남짓한 매장은 주인 취향이 반영된 음반들이 가득하다. 유명 뮤지션의 앨범 발매 기념 티셔츠를 비롯한 각종 상품도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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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음반 가게가 되살아나고 있다. 베스트셀러 음반 위주로 잡지와 문구를 함께 팔던 예전 음반점 방식이 아니다. 대형 유통사에 의존하지 않고 희소가치가 있는 음반을 주로 다뤄 '독립 음반점'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소규모 단일 매장으로, 대형 음반 회사 직원이었거나 DJ 같은 음악 관련 경력이 있는 주인들이 엄선한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2011년부터 매년 독립 음반점들이 모여 음반 박람회를 여는 '서울레코즈페어' 측은 "1회 30팀이던 참가 팀이 작년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매년 사라지는 가게 수만큼 새로운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음반점들은 LP와 CD는 물론 이제는 재생할 기기조차 찾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도 판다. 독특한 공간 연출과 개성적 음반 컬렉션이 이들의 강점이다. 작년 9월 서울 도화동에 문 연 '도프레코드'는 1만5000여 카세트테이프와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 온 1500여 LP를 갖추고 있다. 한국 디제잉 1세대인 DJ소울스케이프가 동료들과 함께 서울 방배동에 차린 '룸360'은 LP 외에도 한정판 티셔츠와 잡지 등을 갖춘 편집숍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동교동에 문 연 '팝시페텔'은 매장에서 LP를 직접 들어볼 수 있고 매주 음악 강연회도 연다. 이런 음반 가게들은 모두 인스타그램 사용자들 사이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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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화동 ‘도프레코드’에서는 카세트테이프와 플레이어도 살 수 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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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음반점들의 공통점은 '베스트셀러'나 '추천 음반'이 없다는 것. 음반 상태에 따라 A~D 등급으로 분류하고, 초판인지 생산지가 어딘지 등을 적은 표가 음반마다 붙어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김윤중 도프레코드 대표는 "할인 음반 목록을 적어놨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치웠다"며 "대형 체인점의 베스트셀러가 독립 음반점에서는 비인기 상품"이라고 말했다.

독립 음반점 주 고객은 대형 음반점에서 팔지 않는 음반을 찾는 사람이다. 50만원을 호가하는 희귀 상품도 "언젠가 살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며 들여놓는 이유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씨는 "음악을 들을 때는 스트리밍으로 들어도 LP 형태로 음악을 소장하려는 이가 늘고 있는 것이 독립 음반점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2016년 전 세계 다운로드 시장 규모(34억8500만달러)가 2021년에는 3분의 1(11억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실물 음반 시장 규모(85억3900만달러·2016년)는 같은 기간 절반 이상(45억9900만달러)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되살아나는 음반점들 덕분에 실물 음반 시장의 축소 폭이 다운로드 시장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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