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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특파원 칼럼] 인민대회당 좌석배치 책임자에게 / 김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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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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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나는 당신이 누군진 모르오. 하지만 이 모든 게 당신 잘못이라고 믿소. 특사의 자리를 그렇게 배치하다니, 대체 정신이 있는 거요! 처음도 아니고 벌써 두번째잖소!

당신, 특사가 뭔지 아시오? 다른 나라 정상을 대표해서 온 사람을 특사라 하오. 그러면 그에 맞는 대접을 해주는 게 국제 관례요. 미국 대통령 특사로 중국에 온 헨리 키신저가 당신이 존경하는 마오쩌둥 주석을 만났던 역사적 순간에도 의자는 나란히 놓여 있었소. 특사는 귀퉁이에 앉아서 보고하러 온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당신이 엉뚱한 자리에 앉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과 워싱턴을 다녀온 뒤 남북, 북-미 접촉 결과를 중국에 설명하러 온 사람이었소. 한국은 특사라 하지도 않는데, 중국이 되레 특사라는 호칭을 붙여줬소. 중국이 얼마나 중시했으면 그랬겠소. 동지, 신문 좀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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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2일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있다. 시 주석을 가운데로 왼쪽에 정 실장 등 한국 당국자들이, 오른쪽에 양제츠 당시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 중국 당국자들이 앉았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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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한 건지도 모르겠소. 외국 손님을 그렇게 앉히면 상석에 앉은 시진핑 주석이 좋아할 거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틀렸소.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각국은 상호존중해야 하고, 평등하게 협상해야 한다” “강자임을 믿고 약자를 깔보는 것은 반대한다”고 역설했소. 이럴진대, 당신 때문에 중요한 특사에게 결례를 끼치면 시 주석이 좋아하겠소? 그게 상호존중과 평등이오?

어쩌면 당신이 역사 공부에 푹 빠져, 천자를 알현하러 북경에 온 옛날 조공국 사절단을 상상했을 것 같기도 하오. 중국이 ‘치욕의 세기’를 딛고 다시 굴기했으니 그 정도 대접은 받아야 한다 생각했을 수 있소. 그것도 틀렸소. 과거식 ‘패권’을 부정하는 것은 중국 외교의 기본 노선이기 때문이오. 마오 주석은 “굴을 깊게 파고 식량을 비축하며 패자를 칭하지 말라”(深?洞廣積糧不稱覇)는 가르침을 남겼소. 시 주석도 20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연설에서 “중국은 영원히 패자를 칭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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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월 마오쩌둥 주석이 중국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 일행을 만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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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그런 말은 그냥 하는 말이라고? 당신은 어찌 그리 무엄하오! “시진핑 동지는 모든 당이 보호하고 인민이 추대하는, 당의 핵심이자 군대의 통수권자이고, 인민의 영수이며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국가의 조타수이자 인민의 지도자”라는 말도 모르시오! 그런 분께서 어찌 허황된 빈말을 하시겠소. 누가 시켜서 그런 건지, 당신 스스로 한 일인지 몰라도,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시오!

한국 사람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지지율이 저리도 높은 대통령이 보낸 특사 2명이 이전 정부 사람들보다 푸대접을 받는데 어찌 가만있겠소. 저 반도 사람들, 나라는 작아도 대가 있는 사람들이오. 2015년 말 청와대를 다녀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에 돌아가서는 “밥도 안 주더라” 하고 볼멘소리를 한 것 기억나시오? 그게 단순히 일정상 문제였을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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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17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왼쪽 가운데) 일행이 평양 만수대 홀에서 최룡해(오른쪽 가운데)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났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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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이 시 주석 특사 자격으로 평양에 갔을 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한 건 알고 있소? 최룡해 부위원장이 대신해서 친서를 받긴 했지만, 면담 때 탁자엔 꽃 한 송이 물 한 잔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오. 다음번에 시 주석이 한국에 갔는데 밥 한 끼 대접이 없다면, 또는 주석 특사가 갔는데 물 한잔 내놓지 않는다면, 그건 모두 당신 때문이오!

당신이 저지른 치명적 외교 실수를 깨달았다면, 당장 시 주석과 중국 인민에게 상처를 준 데 사과하시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사과하시오. 그런 뒤 직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간다면, 시 주석과 중국의 외교가 더 욕먹는 일은 없을 것이오. 당신의 올바른 선택을 기대하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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