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5 (토)

EU, IT 공룡기업들에 ‘디지털稅’ 부과 추진 강행…무역 전쟁 불붙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럽연합(EU)이 구글, 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대기업을 겨냥한 신설 세금인 ‘디지털세’의 구체 방안을 공개했다. 전 세계 매출액이 7억5000만유로, EU 역내 매출이 5000만유로 이상인 IT 기업을 대상으로 EU 역내 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게 핵심이다. 기준대로라면 120~150개 기업이 과세 대상에 포함돼, EU는 약 50억유로의 추가 세수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1일(현지 시각)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디지털세 구체안을 발표했다. EU는 성명문에서 “지금의 과세 제도는 물리적인 지점이 없는 IT기업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며 “디지털세 도입을 더는 미룰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발효를 앞두고 EU가 묘한 시점에 디지털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미국이 맞불조치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U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철강·알루미늄 관세 협상 이후 디지털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사안인 만큼 지체 없이 이날 공개를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

트럼프 행정부는 22일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응한 ‘무역제한 패키지’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글로벌 통상분쟁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모습이다.

◇ “실효세율, 전통기업 23.2% vs IT 기업 9.5%”

EU가 현 시점에 구글 등 디지털 기업을 향해 새로운 과세 체계를 내놓는 것은 전통 제조업보다 훨씬 세금을 덜 낸다는 판단에서다.

EU 자체 추산치에 따르면, EU 역내에서 전통적 기업들의 실효세율은 평균 23.2%에 달하는데 비해, IT 기업들의 실효세율은 평균 9.5%에 불과하다. IT기업들은 이 실효세율 수치가 실제 수치보다 낮게 측정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반박 수치를 공개하고 있지는 않다.

조선일보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이 디지털세 부과안을 설명하고 있다. /트위터


과세 대상은 유럽에서 발생한 디지털 상품의 매출이다. 예를 들어, 구글·페이스북이 창출한 디지털 광고 매출, 애플·스포티파이 등의 음악·영화 서비스 구독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과세 기준이 순이익이 아닌 매출이어서 논란의 여지도 크다. 보통 과세 당국은 기업이 남긴 이익에 세금을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EU 측도 이번 과세안을 ‘잠정안’이라고 설명하면서, 추후 세제 방식을 가다듬겠다는 입장이다.

EU는 순익이 아닌 매출을 기준으로 한 과세방식으로 IT기업의 조세회피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애플·구글 등은 기존 세법을 악용해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 등에 본사를 두고 유럽 지사가 특허비용 등을 본사에 지출하는 관행을 이어왔다. 매출이 발생한 국가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순익이 본사가 있는 국가에 몰리는 것이다.

◇ 美 “단호하게 반대한다”…딜레마 빠진 독일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반대다. 과세 대상의 상당수가 미국 기업이라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이와 관련, “IT 기업만을 겨냥해 새로 세금을 매기려는 그 어떠한 조치에도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최근 내놨다.

또한 미국 정부가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과세 문제를 놓고 EU 측과 신경전을 벌이는 시점이라, EU 측의 움직임이 ‘보복 조치’로 읽힐 수 있다는 점도 EU 과세당국엔 부담이다.

EU 측은 디지털세가 무역 보복조치라는 해석에 대해 ‘전혀 관계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놓았으나, 트럼프 정부의 거센 무역 규제 공세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미국이 무역 흑자국 독일을 향해 무역 적자 규모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어서, 새 세제안을 두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전해졌다.

◇ “세금 제대로 내라” 유럽 곳곳에서 거센 비판 목소리

또 다른 변수는 유럽 내 조세피난처로 꼽히는 아일랜드, 몰타, 키프로스 등도 디지털세 부과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EU가 새 세제개편안을 입법하기 위해선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해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그러나 상당수 국가가 IT 기업의 과세 형평성을 문제 삼고 있어 실제 통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구글 검색엔진의 시장 지배력 남용에 대해서도 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는 구글 측에 앱 스토어의 인기 검색순위 작동방식에 대한 정보 제공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프랑스 정부는 구글과 애플의 불공정한 관행을 막기 위해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최근 현지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애플과 구글이 앱을 개발하고 판매하고자 하는 개발자들에게 협상이나 선택권 없이 수수료를 부과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며 “구글과 애플을 파리상업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남민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