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출신 조완벽이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갔다가 상선을 타고 베트남에 들른 일이 있다. 어느 고관이 베푼 연회에 참석했는데 그가 글을 펼치며 물었다. '이수광이 쓴 시(詩)인데, 아는가.' 명나라에 세 차례 사신을 다녀온 실학자 이수광은 베트남 사신과 교유하며 시를 주고받아 베트남에서도 유명했던 모양이다. 조완벽은 베트남 유생들이 이수광의 시를 애송했다고 돌아와서 보고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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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그제 베트남이 2020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2대 수출국으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한국의 베트남 수출이 966억달러로 미국을 추월, 베트남이 중국 다음가는 수출시장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작년 한국의 베트남 무역흑자는 315억달러로 대미(對美) 무역흑자 178억달러를 훨씬 앞섰다. 한국은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 휴대폰 부품을 주로 수출한다. 월남전과 쌀국수로만 기억하던 그 베트남이 아니다.
▶베트남 U-23 축구팀을 아시아 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은 현지에서 '국민 오빠'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평창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를 뒷바라지한 베트남 아내 김희선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베트남 신부와 한국 신랑의 결혼은 6054건으로 중국 신부(5838건)를 제치고 그해 처음 1위가 됐다. 국내 체류 베트남인도 작년 말 16만명 선으로 중국에 이어 주한 외국인 2위로 올라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부터 사흘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인구 9270만명의 베트남은 2015년 이후 6% 후반대의 고도성장을 기록 중이다. 30대 미만 인구가 절반이 넘어 성장잠재력이 크다.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과 이웃하며 힘겹게 맞서온 경험도 공유한다. 베트남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지만, 이달 초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 기항까지 허용했다. 노련한 국가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김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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