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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안희정도 사용한 텔레그램, 러시아서 '폐쇄' 위기…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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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테러에 이용" 러 당국, 암호화 기술 해독 요구

텔레그램 "시민 권리 훼손" 소송 냈지만 기각 판결

영·미 등에도 '대테러 방지' VS '표현의 자유' 충돌

중앙일보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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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 형제가 개발한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이 연방보안국(FSB)과 법적 공방 끝에 러시아에서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암호화된 메신저 내용 해독을 위한 키(Key)를 제공하라는 FSB의 명령을 텔레그램 운영사가 거부하면서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대법원은 이날 FSB의 명령을 무효로 해달라는 텔레그램 운영사의 소송을 기각했다. FSB의 명령이 합법이라는 판결이다. 이에 따라 텔레그램이 15일 내 암호 해독 키를 FSB에 제공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 미디어·통신 감독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가 텔레그램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에 나서게 된다. 텔레그램은 독일·영국 등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기 때문에 러시아 내 폐쇄 조치가 다른 나라 이용자의 사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텔레그램은 카카오톡 등 일반적인 메신저와 달리 메시지·사진·문서 등을 암호화해 전송할 수 있도록 해 보안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자동 대화 삭제 등의 기능도 제공하고 있어 외부기관의 감찰이나 해킹으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8월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현재 전 세계에서 1억7000만 명 가량이 이용 중이다. 최근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 김지은씨와 연락 때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이용한 것이 알려져 주목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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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보안 기능이 범죄 및 테러 모의에 활용되고 있단 점이다. 특히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테러 모의 및 선전에 악용하면서 텔레그램이 IS의 ‘사이버 은신처’라는 말까지 돌았다. 텔레그램 측은 2015년 11월 IS 연관 채널 78개를 전격 폐쇄하는 등 자체적인 정화 노력에 힘썼다. 그럼에도 2016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IS를 지지하는 10대 프랑스 소녀가 텔레그램으로 테러 모의를 시도하다가 구속되는 등 관련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빌미로 2016년 7월 러시아 비밀경찰 KGB의 후신인 FSB는 명령을 통해 모든 인터넷 정보 사업자들에게 온라인 통신 암호 해독 자료를 제공하도록 요구했다. 텔레그램이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자 FSB는 행정 소송을 냈고 모스크바 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텔레그램사에 과태료 80만 루블(약 1500만원)을 내라고 판결했다. 텔레그램 측은 이에 불복하고 “FSB의 명령이 시민의 권리를 훼손한다”며 소송을 냈지만 결국 기각된 것이다.

텔레그램과 러시아 당국 간의 싸움은 정보기술(IT) 기업의 암호화 기술이 정부와 갈등을 빚는 최신 사례다. 앞서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도 테러 방지 등을 이유로 IT기업에 암호화 기술 접근을 요구했다.

2015년 미 연방수사국(FBI)은 총격 테러범이 사용하던 아이폰을 들여다보게 해달라고 애플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법원에 잠금 해제 강제 명령을 요청하는 소송까지 냈다. 소송은 막판에 취하됐지만 개인정보 보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논쟁은 남았다.

당시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 측을 비난하며 불매운동까지 제안했다.

트럼프 취임 후 지난해 마이클 로저스 미국 국가안보국(NSA) 국장은 휴대폰 암호화가 IS와 같은 테러단체의 통신 감청을 어렵게 만든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텔레그램 측은 일단 불복하겠다는 방침이다. 러시아 내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인은 “텔레그램은 이용자들의 교신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며 다른 법적 방법을 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동 설립자인 파벨 두로프도 트위터를 통해 "텔레그램은 (이용자들의) 자유와 사생활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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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대 소셜미디어 ‘브콘탁테(VKontakte)’와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을 공동 창립한 러시아 출신 파벨 두로프. [사진 위키피디아]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소셜미디어 ‘브콘탁테(VKontakte)’를 만든 니콜라이 두로프(38)와 파벨 두로프(34) 형제가 독일에서 창립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대의 개인정보를 넘기라고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고 2014년 4월 독일로 망명해 별도의 비영리 독립법인을 차렸다. 텔레그램에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암호화 메신저’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텔레그램이 IS 등 테러 단체의 사이버 아지트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파벨 두로프는 “1억 명 이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실제로 텔레그램은 중국·러시아 등 당국의 사이버 검열이 심한 곳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출구가 돼 왔다. 중국은 2016년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했고 이에 이용자들이 왓츠앱으로 대거 이동하자 지난해 왓츠앱까지 차단했다.

이란에서도 인구의 절반 가량인 약 4000만명이 텔레그램을 이용한다. 지난해 말 이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이란 당국은 ‘시위·테러 모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면서 텔레그램을 일시 차단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지난 2014년 이른바 '카카오톡 감청 사태' 때 한달에 수십만명이 가입해 '사이버 망명'이란 말도 나왔다.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을 때도 가입자가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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