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1 (수)

"왜 젊은 친구가 여기 왔어?”…설움받는 시간선택제 공무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 본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6일 청와대 앞에서 시간선택제 채용 공무원의 업무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정부의 대응책을 촉구하는 시위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 본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니 왜 젊은 친구가 하필 시간선택제로 왔어?”

서울의 한 동 주민센터에서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입사 첫날 동장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동장은 A씨 앞에서 “우리 주민센터는 안 그래도 바쁘고 일손이 달린다”며 “왜 하필 시간선택제가 신규로 왔담”이라고 불만을 늘어놨다.

A씨는 “팀에 배치된 후에도 팀장이나 직장상사로부터 ‘바쁜 업무에 시간선택제는 오히려 팀 내 분위기를 흩트리고 기강을 해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들은 그러면서 ‘어서 시험을 다시 쳐서 전일제 공무원이 되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도입해 연간 1000명 이상을 채용했던 시간선택제 채용형 공무원(시간제 공무원)에 대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이로 인해 채용 인원도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지난해 8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채용형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란 업무 능력과 근로의욕은 있지만, 전일(全日)근무가 어려운 인재들을 위해 하루 4시간(주 20시간)만 근무만 하되 정년을 보장하는 직위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처음 도입했다.

하지만 시간제 공무원 제도가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간제 공무원은 우선 정식 채용된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가입이 안 돼 고용 지위가 불확실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지자체에선 업무를 시간제 공무원에게 자주 전가해 전일제 공무원과 다름없는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A씨는 “원래 4~5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는 줄로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팀 내 대체인력이 없어 팀원 중 한명이라도 반차나 휴가를 쓰면 어김없이 전일제 공무원과 똑같은 풀 근무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시간제 공무원은 초과근무에 따른 수당 지급 및 승진 등에서도 일반 전일제 공무원보다 처우가 낮다. 다만 시간제 공무원의 공무원 연금 가입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안이 지난달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부터는 가능해졌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공무원 대상으로 경력단절여성 등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공채 또는 공무원 경력시험 선발예정 인원의 1% 이상을 시간제 공무원으로 채우는 의무비율까지 정했다. 지난해 2월 행정안전부는 “일·가정 양립문화 확산과 공공부분 일자리 창출 지원을 위해 시간선택제 공무원 확대를 추진한다”며 각 부처에서 인력을 요구할 때 시간제에 적합한 직위를 의무적으로 발굴하도록 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경찰청 등에서 지난 4년간 4000명 이상을 시간제 공무원으로 선발했다.

하지만 시간제 근무를 원하는 경력단절녀들을 대상으로 주로 경력시험을 통해 채용한 국가직 공무원과는 달리 지방직은 당초 전일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준비생들이 대거 채용했다. 결국 불만의 목소리가 늘어나면서 지방직 시간제 공무원 임용자 상당수가 퇴직하거나 합격하고도 임용을 포기 혹은 유예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시간제 공무원 의무채용비율 1%를 삭제했다.

실제로 시간제 공무원 채용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시간제 공무원 채용 규모는 2014년 738명에서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1297명, 1241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855명을 선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올해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시간제 공무원 채용규모는 두 자릿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는 채용 인원이 줄어든 이유는 과거 정부정책상 시간제 공무원을 의무적으로 선발했지만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올해부터 임용권자인 지자체장의 자율로 맡겼기 때문이란 입장이다.

정진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제 공무원이 적합한 직위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장기계획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만 뽑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라며 ““결국 일자리 증가라는 정부시책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뽑기만 한 땜질식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