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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엄동설한에도 여학생은 치마만 입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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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포트라이트-일상속 성차별] (2) 여학생 교복치마 강요
치마·바지 병행 학교 많지만 치마만 허용하는 곳도 있어
교복업체 '슬림핏' 제작 짧고 작아 불편함 호소
"여자애가 어떻고 저떻고" 교사 성차별 발언도 심각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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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 교복 기본형은 치마잖아요. 치마를 입혀놓고 '다리를 벌리지 말아라' '뛰지 말아라'고 하시는데 왜 치마를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또 스타킹은 속살이 비치면 야하다고 안 된대요. 우리가 선생님에게 성적 어필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죠."

20일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한 여고에 재학 중인 A양은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 '우리는 매일 사건을 겪고 있다'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발언했다. 복장 문제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각종 성차별적 발언과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게 여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치마 강요에 교복은 꽉 끼고…학생들 이중고

요즘도 여학생에게 바지가 아닌 치마만 입도록 하는 학교가 적지 않다. 지난 2015년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규정 점검 결과 '치마와 바지 선택권 조항'이 있는 학교 비율은 중학교 73%, 고등학교 59%로, 과거보다 병행하는 학교가 늘어났으나 여전히 '보기 좋다'는 이유로 여학생은 아무리 추워도 치마만 입게 하는 곳이 많다.

신발은 검정 구두, 양말은 하얀색으로 맞추게 한다거나 숏커트를 하면 교칙에 위배된다며 벌점을 주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올림머리가 불량해 보인다며 풀도록 하는 학교도 있다. 지난해 서울의 A여고는 수능을 1개월여 앞두고 고3 학생들의 체육복 차림 등교를 금지하고 무조건 교복 착용을 강요해 학생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여학생 교복은 지나치게 짧고 작아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교복업체들이 앞다퉈 날씬해 보이는 '슬림핏'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교복 광고 속 날씬한 여자 아이돌 모델은 몸에 붙는 블라우스와 짧은 치마를 뽐내고 있지만 하루에 몇 시간 이상 교복을 입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런 옷차림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초등성평등연구회와 불꽃페미액션이 유튜브에 게재한 '교복입원(입자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 동영상에서는 최근 여학생 교복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여학생 하복 상의는 잘 비치는 소재인 데다 기장과 팔소매 길이는 7~8세 아동복보다도 짧아 숨쉬기가 힘들 정도다. 출연자들은 "교복이 잘못됐는데 내가 그런 줄 알고 살을 빼야 한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여학생들은 특히 겨울에 치마를 입으면 춥고 불편해 매년 각 학교에 공문을 발송, 여학생들도 바지나 치마 중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다만 학생들 복장규정은 학교장 소관이어서 교육청이 강제할 수는 없고, 교복 크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서울 목동의 한가람고는 후드티, 반바지 등을 교복으로 도입해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최근 성소수자를 배려해 남녀 교복의 차이를 없앤 '젠더리스 교복'까지 등장했다.

■"공부 못하면 예뻐야지"…교사들 막말

교복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교사들의 막말과 성희롱, 성추행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평소 다른 교사들도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는 것이 학생들 주장이다.

김선우양(가명)은 "(남자 선생님이) 생리 냄새 나니까 창문 좀 열라고 말해요. 어떤 아이가 배 아프다고 말하면 무조건 '생리냐'고 묻고, 뭐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생리대 빌려'라고 큰소리로 말한다"고 토로했다. 이지선양(가명)은 "남자 담임선생님이 늘 여학생들에게 '너는 시집 언제 갈래'라고 하길래 저는 결혼 안 한다고 하니 '그런 애들이 제일 먼저 가더라'고 하더라. 이런 대화 자체가 불편해 '요즘 세상에 누가 한국 남자랑 결혼하냐'고 하자 '너 메갈(리안)하냐' '어디 여자가 남자한테 함부로 말대꾸하느냐'고도 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공부 못하면 얼굴이라도 예뻐야지" "살 좀 빼라"며 외모 발언을 한다거나 "남자는 수학을 잘하고, 여자는 국어를 잘한다"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크게 웃는다" 같은 성차별적 발언을 접한 학생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학생들은 '2015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읽기, 수학, 과학 전 영역에서 남학생을 앞질렀는데도 이런 말을 듣는 것이다. 교내 성폭력 예방교육에서도 '짧은 옷 입지 말라'고 하는 등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최원진 활동가는 "학교에서는 단순히 교과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어떤 발언과 행동을 하는지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면서 "외모 평가는 물론 은연 중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교사들이 있어 이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청소년인권연대추진단 공현 활동가는 "교사들의 인권 감수성이나 젠더 인식이 사회 평균보다 높지 않아 이런 문제점들이 학교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교사들이 학생을 아랫사람으로 보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교사들의 성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이 나왔을 때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교사를 처벌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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