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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발언대] 아파트 재건축과 역사유산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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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서울경제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아파트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데 아파트만큼 적절한 대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아파트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라는 말이다. 지난 1960년대 주택공사가 마포아파트단지를 지은 후 우리 사회의 변화와 함께 아파트단지도 변화해왔다. 이제는 40~50년 된 오래된 아파트도 나타났다.

흔히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룬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고 말하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이러한 귀중한 역사는 앞으로 의미가 더 깊어질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자랑스러운 근대화 역사를 무엇으로 우리 후대에 설명할 것인가. 앞에 말한 대로 아파트는 바로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 유용한 열쇠다. 1960~1970년대 근대화를 추구하는 산업화 정책에 따라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며 생긴 주택난, 그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난 아파트와 단지는 당시 사회와 경제, 그리고 나아가 건축 및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종합패키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회변화를 사진·책 등으로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좋은 수단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감 나게 역사를 느끼기에 부족하다. 무언가 실제로 장소와 건물과 또 그와 연결된 이야기가 있어야 비로소 역사의 생생함이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진다. 이는 마치 우리가 유럽 유수의 도시들에 대해 많은 책과 사진을 봐도 결국 유럽으로 직접 날아가 답사와 관광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현장에 가서 보고 만지고 느껴야 비로소 실감 나게 내 몸속에 생생히 기억되고 즐거움과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50년 내외의 오랜 아파트를 모두 철거하고 새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그 중 일부 아파트를 보전하자는 논의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좀 더 생생하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근대화 과정을 우리 스스로, 그리고 우리 후배·후손들이 잘 느끼고 교훈으로 삼게 하자는 것이다. 보전되는 오래된 아파트는 박제화돼 보기만 하는 건물이 아니라 원모습을 존중하는 개보수 후에 주민 공동시설이나 문화시설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나아가 한 회사에서 설계하고 한 건설회사에서 수백가구씩 건설해 다양성이 결핍돼 성냥갑 아파트라고 비판받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속에 보전된 옛 아파트는 전혀 다른 건축형태를 보여줘 단지 공간환경의 다양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사실 공간환경의 다양성은 결국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형태나 재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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