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주꾸미 맛 여행
소라 껍데기에 알 품은 주꾸미가 쏙
회 치고 데치고 볶고 주꾸미 무한 변신
4월 1일까지 마량포구서 축제 열려
충남 서천은 주꾸미 맛 잔치가 한창이다. 수산물특화시장 상인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꽃처럼 말린 주꾸미를 들어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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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한 새벽, 주꾸미 출어에 나서는 어선.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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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6시 서천의 주꾸미 조업 중심지 홍원항에 닿았다. 궂은 날씨에도 출어하는 어선이 많았다. 해마다 봄에 열리는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를 앞두고 음식점마다 주꾸미 확보에 열을 올렸다. 서천군의 협조를 얻어 김진권(57) 선장이 이끄는 4t급 어선 대광호에 승선했다.
빈 소라 껍데기에 숨어 있는 주꾸미를 갈퀴로 긁어 조업하는 방식을 '고동'이라 부른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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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항을 나선 지 10여 분, 선원이 굵은 밧줄을 도르레에 감았다. 수면으로 드러난 밧줄에 소라 껍데기가 대롱대롱 달렸다. ‘까꾸리’로 부르는 갈퀴로 껍데기를 훑으니 드디어 주꾸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이 8개 달린 주꾸미는 낙지의 축소판이었다. 몸길이는 15㎝ 정도로 개중에는 주먹 만한 머리가 달린 것도 있었다.
주꾸미 빨판에 손가락을 댔다가 흡착력에 화들짝 놀랐다. 하긴. 1976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도 주꾸미였다. 주꾸미가 콱 붙잡은 고려청자 한 점으로 그해 10월 대대적인 유물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새벽 조업에 나선 김진권 선장이 갓 잡은 주꾸미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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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놈 머리를 꾹 누르니 밥알 같은 것이 비쳤다. 봄 별미로 통하는 주꾸미 알이었다.
“시중에서 팔리는 주꾸미는 대부분 베트남 산이에요. 알이나 내장을 제거한 채 들여오죠.”
누군가는 주꾸미 알 맛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3시간 조업 끝에 대광호는 15㎏의 주꾸미를 수확했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서천 앞바다에 알 품은 주꾸미가 가득하기만 바랐다.
서천 최대 재래시장인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프리랜서 김성태서천 주꾸미 축제를 앞둔 15일 오후 충남 서천 수산물특화시장에서 상인이 주꾸미 등 수산물을 선보이고 있다.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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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큰 게 좋은 줄 알지만,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가장 맛있지. 주꾸미도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꿔. 색이 연하면 신선도가 떨어진 거야.”
어물전 갯것을 구경하던 찰나, 상인들이 “우리 시장의 명물”이라며 노란 바구니를 가리켰다. 1층 수산 시장 물건을 2층 식당가로 배달할 때 쓰는 물건이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2층에서 바구니에 달린 밧줄을 끌어올린다.
주꾸미 머리에는 하얀 알과 먹물이 들어 있다. 3월 말께 쌀밥 같은 알이 머리 한 가득 찬다. 봄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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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에 주꾸미를 잘라 넣을 때도 요령이 있다. 살짝 데친 주꾸미 목 부분을 자른 뒤 다리는 2개씩 나눈다. 다리는 오래 익히면 질겨지기 쉬워 익힌 지 30초 만에 건져 먹어야 한다. 냉이 향이 감도는 주꾸미의 야들야들한 살을 씹으니 입 안에 봄이 깃들었다. 알은 충분히 익혀야 해서 보통 머리를 마지막에 맛본다. 먹물은 감칠맛이 나고 알은 꼭 찰기 없는 쌀 같았다. 생애 가장 농후한 맛의 디저트였다. 16일 서천특화시장 주꾸미 소매가는 1㎏에 3만3000원이었다. 1㎏면 어른 4명이 충분히 먹는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라면 사리는 건너뛰면 안 된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이다. 샤부샤부 조리비(8000원)를 따로 받는다.
봄철 없는 입맛도 살려주는 주꾸미 볶음.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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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여행은 주꾸미를 회로 먹을 수 있어서 더 즐겁다. 주꾸미로 주꾸미탕탕을 만드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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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구지횟집의 주꾸미 볶음은 양념 색이 흐리멍덩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구수한 것이 주꾸미가 물리지 않고 계속 들어간다. 김경수(60) 사장은 “과일과 버섯 등 20가지 재료를 섞어 5년간 숙성한 양념장을 쓰는 게 맛의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홍원항 근처 맛집으로는 ‘서해바다로’(041-952-3553)를 추천한다. 아들 이원희(37)씨가 잡아 오는 주꾸미를 아버지 이상원(62)씨가 주꾸미 회로 낸다. 낙지처럼 잘게 ‘조사서(다져서)’ 이른바 주꾸미탕탕(5만원)을 만든다. 낙지보다 부드럽고 살이 차지다.
서천동백꽃주꾸미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천 마량포구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주꾸미 낚시를 체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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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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