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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사설]기본권 확대 개헌,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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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前文)과 기본권 부분을 공개했다. 전문에는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시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저항권을 행사한 역사적 경험과 정신을 헌법에 담겠다는 것이다. 헌법은 국가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년이 지났다. 이제는 시대변화에 따른 시민의 요구를 담아낼 필요가 있다.

개헌안은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 국내에 외국인이 200만명 이상 살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보편적으로 보장받는 기본권의 주체를 국적에 관계없이 확대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제 잔재인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꾸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강화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특히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과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고용 안정, 일과 생활의 균형에 관한 국가의 정책 시행 의무를 신설한 것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노동권을 업그레이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본권은 시민의 삶과 직결되는 것이요, 기본권 강화는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명권·안전권·정보기본권·주거권·건강권 등의 기본권을 신설한 것은 비록 선언적이지만, 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안전망 구축이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 강화를 헌법에 담은 것 역시 그간 국가가 시혜적 차원에서 베풀었던 사회보장책을 시민의 기본 권리로 바꿔 사회보장을 실질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를 신설한 대목이다. 말은 시민이 주권자라고 하지만 정작 시민이 국가 의사결정에 참여할 통로는 제약됐던 것이 현실이다. 국민발안제 등은 현 대의(代議)제에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보완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폭을 넓힌다는 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한 것은 향후 경찰도 직접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주화 30년이 지났지만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서민의 삶은 여전히 어렵다. 시민의 뜻을 따른다는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결과이다. 모든 법 위의 법인 헌법을 새로 쓰면서 주권자 시민의 복리를 다시 새기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여야는 개헌 시기나 방향을 놓고 실랑이만 벌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도대체 개헌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이 든다. 정치권이 서로의 유불리를 따져 개헌 여부를 다툴 일이 아니다. 청와대는 21일에는 지방분권·국민주권, 22일에는 정부 형태 등 헌법기관 관련 사항을 추가 공개한다고 한다. 야당은 이런 ‘쪼개기 공개’가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략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의 국회 표결에 참석하는 의원은 제명 처리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러고서야 모처럼 찾아온 시민 참여 개헌의 기회를 살릴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진정성 있게 한국 사회 전체를 보고 개헌에 다가가야 한다. 6월 처리를 걸고 야당 압박용으로 추진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당을 어떻게 개헌 테이블에 앉도록 할 것이냐가 개헌 실현을 위한 최대 관건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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