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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세상 읽기] 고령사회 적응 계획을 짜자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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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이원재
LAB2050 대표·경제평론가


정부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켰던 2005년 합계출산율은 1.08명이었다. 그동안 무상보육부터 청년 미팅 주선까지, 큰 정책과 작은 정책, 보수적 정책과 진보적 정책, 묵직한 정책과 농담 같은 정책이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12년 동안 126조원을 썼다.

그런데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이 됐다. 정책을 통해 직접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사회는 늙어갈 것이다. 사회 역동성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 됐다.

이제는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지면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부양해야 할 노인이 이미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부양해야 할 아동과 청소년들까지 늘어나면 부담은 더 커진다. 부양을 맡을 20~50대 인구가 이미 줄기 시작해서다. 부양비(부양자 대비 피부양자 비중)가 높아지면서 중간에 낀 세대는 30여년 동안 노인과 아이를 같이 돌봐야 하는 ‘더블케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너무 오래 저출산이 진행되어서, 인구 균형이 이미 깨어진 탓이다. 출산율을 높여 고령화를 막겠다는 잘못된 희망을 내려놓고, 고령사회 적응 계획을 짜는 데 집중할 때가 됐다.

어쩌면 향후 몇년 동안은 고령사회 준비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지금의 청년과 청소년들은 ‘더블케어’에 시달리고, 노인 빈곤은 심각해지며, 아동과 노인 사이에 국가 재원을 놓고 다투는 볼썽사나운 광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사이 사회 역동성은 처참하게 떨어지고 말지도 모른다.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게 한 가지 방법이다. 미국은 연구개발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방과 건강 문제 해결에 투입한다. 일본은 ‘사회 5.0’ 개념을 제시하며 고령화와 자연재해 등 고유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을 강조했다. 우리도 개별 기술과 산업 지원에 투입되는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로 돌려야 한다. 기술로 노인 돌봄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60대, 70대가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하는 게 다음 과제다. 64살까지로 되어 있는 생산가능인구 연령을 5년만 뒤로 돌려도 부양비 부담은 크게 완화된다. 사회적 경제, 돌봄, 마을공동체, 비영리단체, 문화예술 등 고령자가 적절히 일하면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은 무궁무진하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이런 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세대교체가 가능하도록 연령 규범을 바꾸고 젊은 세대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고령사회에서도 사회 역동성을 잃지 않으려면, 젊은 리더와 나이 든 팔로어가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사회규범과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서 공공기관 이사회 등에 세대 안배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보육정책, 부모 지원 정책, 아동수당, 모성보호 모두 좋은 정책이지만,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여겨지면 곤란하다. 어린이 인권과 부모의 복지는 그 자체로 정책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사람 숫자 늘리기에서 삶의 질 높이기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다행히 이번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출산 양육을 인권으로 인정받는 사람중심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사람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보던 과거 생각에서 벗어나 반갑다. 인구 규모가 국부의 기준인 것처럼 여기는 생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역동성을 잃지 않는 고령사회를 만들어가는 게 최선의 길이다.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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