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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자기방어냐 성차별이냐…'펜스룰'을 향한 엇갈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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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 속 대안으로 언급…실효성 놓고 의견 분분

"여성 배제 근거로 악용 우려…또다른 여성 공격 방식"

연합뉴스

펜스룰 [연합뉴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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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성폭력의 시대는 끝났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범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 및 정부 대책 마련 촉구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2018.3.15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김예나 최평천 기자 = "한국에서 펜스 룰이랍시고 자행되는 일들을 보면 펜스 본인은 불쾌해서 펄쩍 뛸 것 같다. 아내 외의 여자를 사적 영역에서 만나지 안겠다는 것을 한국에서는 공적 영역에서 여자를 소외시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트위터 아이디 'sang****')

"양심에 따라 군대에 가지 않아도 무죄라고 하는데, 내가 여자한테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양심에 따라 여자들과 거리를 두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미투를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펜스 룰을 따르고 싶으면 따르면 된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발췌)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 시절이던 2002년 의회 전문매체 '더힐'과 한 인터뷰에서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유래했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가 15년 전 펜스 부통령의 발언을 인용한 게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과 맞물리며 화제가 됐다. 이후 '펜스 룰'은 '미투' 운동이 훑고 지나가는 길목마다 등장해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지곤 한다.

온 나라가 '미투' 운동으로 들썩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펜스 룰'은 성 추문에 휩싸이지 않기 위한 방어수단이라는 의견과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최근 '펜스 룰' 전용 게시판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미투 운동이 진행되는 대한민국에서 남성이 대처하는 방법, 일상에서 '펜스 룰'을 지키는 방법 등을 설명하는 글이 올라온다.

카카오톡 등 온라인 단체대화방에서는 매장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 할 때 남자 점원을 찾고, 길 가다 여자가 나눠주는 전단은 받지 말라는 식으로 '미투' 운동을 조롱하는 내용의 '펜스 룰 10계명'이 돌아다닌다.

회사원 유모(31)씨는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괜히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말고, 사적인 농담도 줄이자는 말을 많이 한다"며 "성차별이 아니라 자기방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펜스 룰'에 비판적인 이들의 의견은 또 다르다. 이 원칙이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공적 영역에까지 침투해 결국 직장 내, 조직 내 성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직장인 이모(36·여)씨는 "아내 없는 술자리에 가지 않겠다는 펜스 부통령의 말이 한국에서는 여자 빼고 회식하겠다, 남자끼리만 회합하겠다는 뜻으로 통용되지 않느냐"며 "여자라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남성이 조직 내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집단에서 '펜스 룰'은 여성을 기득권에서 배제할 근거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대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는 "'펜스 룰'을 '미투' 운동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성범죄의 원흉이 여성에게 있으니 여성을 배제하겠다는 식으로 상황을 잘못 진단한 것"이라며 "결국 여성을 공격하는 또 다른 방식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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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근절 고용노동부가 책임을 다하라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책임을 다해 달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18.3.13 [연합뉴스 자료사진]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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