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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트럼프 “마약 거래상에 사형을”…美 각계각층 약물 중독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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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각) 오피오이드(opioid·마약성 진통제) 등 약물·마약 불법 거래상에 사형을 구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내 약물 중독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인 뉴햄프셔를 찾아 “마약 불법상들에게 강경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궁극적인 벌은 사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료·인권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형’까지 거론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약물 중독 문제가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코카인, 헤로인과 같은 일반 마약은 물론, 진통제부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처방약까지 각자의 사정에 따라 계층을 불문하고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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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처럼 쓰이는 진통제의 일종인 옥시코돈 /CNN


◇ 美 하류층의 ‘마약’이 돼버린 진통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거론한 오피오이드란 ‘아편’(opium)과 ‘오이드’(oid·∼와 비슷한)의 합성어다.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마취 물질이라는 뜻이다. 펜타닐, 옥시코돈, 하이드로코돈, 하이드로몰폰, 메타돈 등이 오피오이드에 속하는 대표적인 제품들이다. 미국 병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진통제인데, 다량 섭취하면 마약처럼 환각 작용을 일으켜 마약 중독자들의 ‘대체제’로 여겨진다.

오피오이드가 사회적 문제를 떠오른 것은 1990년대 후반 미국 보건 당국이 진통제 처방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부터다. 환자가 타이레놀, 아스피린 등 기존 진통제는 약효가 없다고 호소하면 대부분 의사들이 이들 제품을 손쉽게 처방해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오피오이드 중독자는 힐빌리(hill billy) 등 주로 미국 중부 시골 지역의 빈민들이다. 코카인 등 일반 마약보다 가격이 싼 데다, 마약처럼 환각 효과를 볼 수 있어 일반 마약 대신 효과가 쎈 진통제를 찾게 되는 것이다. 중부 빈민의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돈 벌이에 급급한 의사들도 무분별하게 값싼 ‘마약’을 처방을 해주는 등 각종 사회 현상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진통제 중독자’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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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부 오하이오의 오피오이드 중독자가 응급실로 실려가고 있다. /게티


오피오이드 중독자가 늘어나자 동네 곳곳엔 이들을 위한 불법 오피오이드 제조 시설이 생겨났다. ‘약물 방앗간(pill mill)’이라 불리는 가내 불법 제조시설은 물론,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동네 시골의원에서도 진통제를 마치 ‘캔디’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약물 중독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우유주사’로 불렸던 수면 마취제 프로포폴이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큰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매일 115명씩 사망

미국 국립보건원(NIH)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미국내 약물 과다 복용 사망자는 6만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매일 115명의 미국인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해 총기·교통사고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9월까지의 오피오이드 중독자는 전년동기대비 30% 늘었고, 특히 중서부 지역의 중독자는 전년동기대비 7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약물 중독자 수는 해마다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중독자가 워낙 많아져 기대수명마저 줄어들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전년보다 0.1세 줄어든 78.6세였다. 이는 2015년에 이어 2년 연속 낮아진 것이다. 2015년 이전 가장 최근 전년 대비 기대수명이 낮아진 해는 1993년이고 2년 연속 하락은 치명적인 독감이 유행했던 1962∼1963년 이후 처음이다. CDC는 특히 2016년에는 약물 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자가 6만3000명으로 전년 대비 21%나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4만2000명 이상이 오피오이드 남용에 의한 사망자다”라고 밝혔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약물 중독에 따른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 중산층은 ‘머리 좋아지는’ 약물 중독

미국 하류층의 오피오이드 남용 문제가 심각하다면, 중산층에서 종종 문제시되는 약물은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다. 애더럴(Adderall) 등이 대표 상품으로, 마약 성분을 품고 있는 암페타민이 주성분이다.

ADHD 치료제를 일반인도 찾게 되는 것은 섭취 후 약 20분 후부터 일시적으로 집중력과 신체 활동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수험생·대학생·취준생이나 운동선수 등 상류층으로 거듭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산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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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ADHD 치료제 /블룸버그


예를 들어, 수험생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 밤새워 공부하기 위해 몸에 큰 이상이 없음에도 이 치료제를 먹고 수험 준비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무한 경쟁’을 신체 극한까지 치닫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 콜롬비아 내전 끝나자...코카인 생산량 역대 최고

코카인, 헤로인 등 일반 전통 마약 역시 여전히 미국 정부의 큰 골칫거리다. 레이건 정부 당시엔 영부인까지 TV에 출연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였다. 지금도 코카인 중독에 따른 사망률은 전체 약물 중독 사망 원인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 마약은 가격 급등으로 중·하류층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졌던 탓에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로까지 여겨지지는 않았다. 마약 생산의 본산인 콜롬비아가 오랜 내전으로 생산과 운반에 차질을 빚어 미국으로의 공급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코카인 가격이 떨어지면서 미국 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가 오랜 내전 끝에 최근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등 주요 반군과 평화 협정을 체결해 공급처들이 속속 생산량을 늘린 덕분이다.

미국 정부 집계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코카인 생산량은 800톤에 육박해 2016년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4년 전보다 4배 늘어난 수준이다. 콜롬비아의 코카인 생산 부지는 2012년엔 7만8000헥타르에서 최근엔 18만8000헥타르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상당수가 미국으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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