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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기억할 오늘] 동인도회사(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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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602년 탄생했다. 정경일체 군산동일체의 최초 다국적 주식회사였다. 사진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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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두스 데스코브리멘투스(Era dos Descobrimentos)’라는 포르투갈어에 기원한 ‘대항해 시대’ 혹은 ‘발견의 시대(The Age of Discovery)’라는 말은 언어ㆍ관념까지 침탈한 16~18세기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은밀하고도 끈질긴 잔재 중 하나다. 반면 식민수탈의 주체라는 공식적 오명을 덮어쓰고 역사의 단죄를 당한 건, 그 대항해ㆍ발견의 주역이기도 했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였다. 그 역할의 잔영은, 역시 다국적 주식회사의 이름으로 20세기 중반까지 중ㆍ남미와 아시아 일부 옛 식민지에 존속했고, 일부는 지금도 그러하다고 여겨진다. 1602년 3월 20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됐다.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다국적회사였다.

제국주의의 실질적 주역은 상업자본, 엄밀히 말하면 유럽 발틱상인이었다. 1세대 스페인 포르투갈의 ‘대항해’와 신대륙 발견으로 ‘노다지’를 알게 된 유럽 상인들은 향신료 등 아시아 물산의 무역 독점을 위해 잇달아 대양 항해에 나섰고, 발트해 무역의 강자였던 네덜란드가 단연 앞섰다. 그들은 1594년 암스테르담의 ‘원국(遠國)회사’를 시작으로 동인도무역회사를 잇달아 설립, 각기 항해에 나섰다. 암스테르담 항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의 왕복 항해에는 약 2년 반이 걸렸고 목숨의 절반쯤은 내놓아야 하는 거대 벤처 프로젝트였다. ‘벤처’여서 초기에는 이윤도 낙관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성장 가능성에 모험을 걸었다. 동인도회사라는 이름을 건 최초는 상인 집단은 상대적 후발국가인 영국에서 1600년 탄생했다. 일종의 프로젝트 팀으로 엘리자베스 1세의 칙허를 얻어 결성됐고, 1613년 무렵에야 이탈리아 ‘콤파니아(합자회사)’의 모델을 본떠 영속적 기업으로 변신했다.

이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들도 통합 선단을 꾸려야 했고, 그 방식이 주식회사였다. 실제로 주권을 발행해 지분을 판매했고, 최초의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1609년 설립됐다. 거기 왕실과 유럽의 상업자본들이 참여했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일체였고, 군산복합체가 아니라 군산동일체였다. 동인도회사는 조약 체결 및 상관 개설권, 무역 독점권, 선전포고 권한까지 왕실과 의회로부터 부여 받았다. 단일 회사로는 역사상 유래 없을, 세계 최대 무역회사가 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7세기 중엽까지 세계를 제패하다 18세기 말 영국 함대에 밀려 파산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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