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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15] 거대 거미에서 찾아낸 母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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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손톱만 한 거미만 봐도 겁에 질리는 증상을 거미 공포증이라고 한다. 거미 공포증이 있다면,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의 ‘마망’은 악몽 같을 것이다. 송곳처럼 뾰족한 여덟 개의 발끝을 땅에 딛고, 9m가 넘는 높이로 솟아오른 쇳덩어리 거미라니 말이다. 부르주아는 이토록 공격적인 거미를 ‘마망’, 즉 ‘엄마’라고 불렀다.

작가는 파리에서 문양을 짜 넣은 직물, 태피스트리를 판매하는 부모 밑에서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딸 셋을 연달아 낳은 그녀의 어머니는 죄인처럼 지냈고, 아버지가 집안에서 버젓이 불륜을 저질러도 모른 척하고 살았다. 그리스 신화 속, 뛰어난 직공이었던 아라크네는 강간과 불륜을 일삼았던 신들의 문란한 면모를 직물에 짜 넣었다가 벌을 받아 거미가 됐다. 그래서 거미류의 영어명이 아라크니드, 거미 공포증은 아라크노포비아다.

조선일보

루이즈 부르주아, 마망, 1999년, 청동, 대리석, 스테인리스스틸, 927×891×1023cm,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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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청동 거미는 태피스트리 직공이던 어머니이자 남편의 불륜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에게 부르주아가 바치는 헌사다. '마망'을 만들었을 때 부르주아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어릴 때 부모에게 느꼈던 실망과 배신감이 작품으로 표출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렸다.

강철 같은 부르주아의 거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몸통 한가운데 매달린 알 주머니다. 언제든 어미의 배를 찢고 튀어나올 것 같은 알들을 힘겹게 품고 버티는 ‘마망’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눈과 귀를 닫고 실을 짜내던 부르주아의 어머니와 같다. ‘마망’의 다리 사이에 서서 위를 바라보면 온 세상만큼 크기만 했던 엄마를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처럼 내 몸이 작아진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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