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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출 0원일 때도, 월급 다 주고 기술자 붙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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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빠져나가면 진짜 망한다는 생각에, 매출이 없을 때도 월급을 다 주고 기술자들을 붙잡았습니다. 이게 매출 0원이던 회사를 연 600억원대로 키운 원동력 아닐까요."

장재진(57) 오리엔트그룹 회장은 법정관리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려낸 비결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오리엔트그룹은 실험동물 생산·수출입을 하는 오리엔트바이오, 자동차 부품사인 오리엔트정공, 전원공급장치를 제조하는 오리엔트전자 등 13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포항 출신의 '흙수저'였던 장 회장은 1991년 대구에서 200만원을 들고 실험용 쥐 생산사업을 시작해 자수성가했다. 오리엔트바이오는 민간에선 처음으로 실험용 동물을 생산하며 국내 실험동물 시장 1위 업체로 성장했고, 여러 기업을 인수해 연매출 1100억원대(연결기준)로 컸다.

조선비즈

매출이 전혀 없던 오리엔트정공을 살려낸 장재진 오리엔트그룹 회장은 “품질과 인재에 투자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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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오리엔트바이오가 자동차 부품사인 오리엔트정공(당시 사명 넥스텍)을 인수했을 당시, 이 회사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였다. 당시 경영진은 "100억원만 투입하면 회사가 정상화될 것"이라며 인수를 권했고, 장 회장이 이를 수락해 인수하면서 법정관리는 면했다. 장 회장은 400억여원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100억원을 지불하고 회사를 샀다. 하지만 인수하고 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엔진 부품 등을 100%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었는데, 현대차가 발주를 중단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회사는 품질 불량, 납품 지연 등으로 이미 현대차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장 회장이 인수한 지 한 달 만에 회사의 월매출이 '0원'으로 떨어졌다. 장 회장이 그동안 키워놓은 그룹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사기 당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내가 살 길은 소송보다는 회사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장 회장은 품질 개선에 투자를 집중했다. 먼저 경북 구미·경주, 충남 천안에 퍼져 있던 3개 공장 중 2개를 매각하고, 구미 공장으로 설비를 집중했다. 효용이 떨어지는 건물을 공장으로 개조해 증축했고, 노후화로 정교함이 떨어지는 기계들은 바꿨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효율을 높였다. 납품처인 현대차·현대모비스의 공장이 있는 울산과 천안에는 물류센터를 만들어 주문 즉시 납품하고 신속한 A/S를 가능하게 했다. 장 회장은 현대차 구매 담당자를 직접 만나 "회사를 살리고 품질을 책임질 테니 다시 납품하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는 기술 인력이 회사 경영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매출이 없을 때도 월급을 절대 줄이지 않았다. 또 기존 임원 중 엔지니어 출신 상무에게 주요 경영 판단을 맡기고,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그 결과 현대차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기존 제품을 조금씩 납품하기 시작했고, 2년간 '불량 제로'를 유지하자 신규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기회도 열어줬다. 이에 따라 오리엔트정공은 2013년 현대차와 공동 개발로 연비 절감용 자동차 부품인 DCT(듀얼클러치변속기)의 핵심 부품을 개발했고, 2015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경량화를 위한 고(高)진공 알루미늄 정밀주조공법을 개발해 DCT 부품에 적용했다.

매출도 2011년 이후엔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지속했다. 작년엔 1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했다. 장 회장은 "올해 매출 10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며 "향후 급성장하는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회장은 "오리엔트정공을 인수한 직후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최대 위기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 기회가 왔다"며 "젊은이들에게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wel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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