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경 화가 |
연초부터 불편한 접촉을 겪은 여성들의 폭로가 끊이질 않는다. 이 폭로는 흉흉한 뉴스의 핵심에 자리 잡고 법조계, 문화예술계, 정치언론계, 대학가 등을 소란하게 한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과정에 불편한 접촉은 왕왕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화가 난다. 문명의 출발부터 남성 중심의 사회로 발전해왔고 그 속에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이 분노는 죽을 때까지 지니고 살아야 할까.
최근 미투는 이 억압을 폭로하는 출구가 된 듯하다. 연일 미투로 남성의 성범죄가 온라인과 방송을 통해 게시되고, 그 결과 유명인의 사회적 추락과 자살 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그래서 미투는 한국에서 유독 쇼크로 표현된다. 언론이 폭로자의 진술을 여과 없이 방영하거나 사적인 카톡 메시지를 손쉽게 공개한다. 국회는 139건의 미투 관련 법안을 절차에 옮기지 못하고 있고, 검경은 혐의자들을 죄다 수사하기에 역부족이다.
보나르, ‘여인과 미모사’, 캔버스에 유채,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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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미투운동은 미국의 흑인 여성 타라나 버크에 의해 창시됐다. 불우아동을 위한 캠프에서 만난 한 여자아이가 양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자신도 어릴 때 유사한 일을 겪었음에도 “나도 그랬어(me too)”라고 말하지 못했고 아이를 돕지 못했다. 이후 이 일이 내내 그의 마음을 짓눌렀고 바로 “나도 그랬어”라는 호응과 공감을 위해 미투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그 아이의 고백, 즉 침묵을 깨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발언에 주목한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강요된 침묵을 깨는 개인의 진솔한 고백이다.
버크의 미투운동은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각종 추문들이 드러나면서 들불처럼 전세계로 번지기 시작했다. 여배우인 알리사 밀라노의 뒤를 따라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이 SNS에 “나도 그랬어”라는 고백과 함께 해시태그(#me too)를 달았다. 캠페인 하루 만에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리트윗했고 지지를 표명했다. SNS는 사람들을 철저히 개인으로 만들지만 해시태그에 연결하는 검색어 노출을 통해 엄청난 응집력을 발휘한다. 미투가 멈출 기미는 현재로서 없어 보인다. 나는 한국의 미투가 쇼크가 아닌 ‘운동’으로 사회 저변에 번지길 바란다. 집단 속에 침묵하지 않고 깨어나는 여성과 그들을 인정하는 환경이 되기 바란다.
로마에 들렀던 봄날 돌 타일 위를 걸어가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노란 꽃을 지닌 것을 봤다. ‘여성의 날’에 여자에게 미모사 꽃을 선물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풍습이라고 했다. 로마의 골목을 휩쓰는 미모사 꽃의 노란 파도는 향긋한 냄새와 함께 세상을 온통 바꾸는 듯했다. 그런데도 그 파도는 세상을 손상하지 않은 채 변화시킬 암시처럼 비쳤다. 피와 파괴에 의한 물리적 변화보다 이제 깨어나는 여성에 의해 세상의 저변을 화학적으로 변화시킬 때가 된 것 같다. 우리 사회도 개인의 회복과 가정의 지속 그리고 활짝 개화하는 날을 위해 여성의 발언과 몸짓에 제대로 반응해 주시길.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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