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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남정호의 시시각각] 문 대통령, 노무현 외교에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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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외교관에 대한 불신 깊어

노통, 북미통 중용해 조언 들어

외교 전문가의 경륜 무시 말아야

중앙일보

남정호 논설위원


달라도 너무 다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생에서 이념까지 딴판이지만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직업 외교관을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보낸 4강 특사에 이어 4강 대사 인사에서도 외교관을 물먹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선 이런 말까지 했다. “최고 엘리트가 모인 외교부가 국력과 국가 위상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는 판단이 많다”고. 외교부가 밥값을 못한다고 대놓고 비판한 셈이다. 이후 문재인 정권은 외교부 주류로 통했던 미국통들을 죄다 한직에 보내거나 옷을 벗겼다.

트럼프는 더했다. 지난해 의회의 제지로 좀 늘긴 했지만 국무부 예산을 30% 넘게 깎으려 했다. 인원 충원도 제때 안 해 출범 1년이 넘게 150여 개의 국무부 고위직 중 3분의 1이 공석이다. 그중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 담당 인맥은 전멸 수준이다. 지난 1월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교수가 낙마한 데 이어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마저 이달 초 사퇴했다. 북한인권 대사 역시 비었고 아시아 라인의 최고 책임자인 수전 손턴 동아태 차관보 대행마저 대화파로 찍혀 쫓겨날 판이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 회담을 코에 앞두고도 한·미 간 협상을 맡은 양쪽 실무 라인이 약화할 대로 약화한 것이다.

물론 양국 외교관들이 푸대접을 받게 된 데는 자신들의 책임도 있다. 한국에서는 별 하는 일 없이 파티나 쫓아다닌다는 인상을 줘온 게 사실이다. 트럼프 눈으로는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족속이 외교관들이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누가 뭐래도 외교 분야의 전문가는 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외교관의 의견을 무시했다간 사달이 날 수 있고, 실제로 그래 왔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대표적 사례다. 외교부 의견을 외면한 채 이뤄진 독도 기습 방문은 한·일 관계를 회복 불능으로 떨어뜨렸다. 미국의 외교 참사로 꼽히는 베트남전 참전, 이라크전 개전 모두 국무부 반대를 무시해 빚어진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배울 게 많다. 그는 참여정부 외교 수장이었던 송민순 전 장관이 『빙하는 움직인다』를 내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 책에서 보듯) 참여정부는 중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는 건강한 정부였다”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라”고.

하지만 그가 놓친 대목이 있다. 노 대통령은 정통 외교 관료, 그것도 미국통인 반기문·송민순 두 사람을 청와대 보좌관과 외교부 수장에 임명해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였다. 이뿐만 아니라 중대 사안일 경우 외교·통일 전문가들을 불러 격론을 벌이게 한 뒤 국익에 맞는 방안을 택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보수층도 높게 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이었다.

정치인의 직관과 결단력은 그만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경륜과 균형감이 더 빛을 발한 순간도 많다. 북·미 정상 간 만남을 1974년 첫 미·중 정상회담과 비교하는 시각도 적잖다. 놀라운 상상력과 결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선 닮은꼴이다. 하지만 미·중 회담은 20세기 최고의 외교관이라는 헨리 키신저의 주도 아래 3년간이나 준비된 이벤트였다. 이에 비해 북·미 회담은 별 검토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져 언제든 취소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회담을 성공시키려면 전문가인 외교관들의 헌신과 지혜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에서 ‘신의 한 수’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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