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이주열 옛 칼럼 보니…개발연대 시절 ‘박정희 띄우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013년 12월 ‘한국경제, 초심 되살려야…’ 칼럼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 신뢰하고 따라야” 강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박정희 시절’ 띄우기

석달 뒤 박근혜 전 대통령, 총재 후보로 지명



한겨레

2010년 4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1일 연임을 위한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과거 야인 시절 칼럼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총재에서 퇴직한 뒤 모교(연세대) 특임교수로 있던 시절 쓴 이 글엔 보수적인 경제관과 함께 1960~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던 개발독재 시절에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총재는 2013년 12월6일 치 <문화일보>에 ‘한국경제, 초심 되살려야 할 때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 서두에서 이 총재는 ‘저성장·저물가에 급속한 고령화’, ‘체감경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한국경제의 현실을 진단했다. 이어 “규제의 획기적 완화,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제고” 등 처방도 다 나와 있다며, “우리 모두의 의식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를 신뢰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력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은 결국 정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국민화합이나 여론통합을 얘기할 수야 있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나 소개, 또는 정부의 어떤 정책을 따라야 하는지 설명없이 무턱대고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또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입안돼 추진됐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언급하며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돛의 역할을 했다”고 추어올리고 “1960년대 모두가 가지지 못했던 그 시절, 잘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노력한 결과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성취를 이뤄냈다”며 개발시대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다.

이외에 “정쟁만 일삼고 있는 정치권”, “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업가정신 존중”, “성장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업”, “패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다 승자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규제 정책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등 전경련 부류의 보수우파 논객을 떠올리게끔 하는 대목들도 여럿이다.

이 총재가 지적한 대로 한국경제는 그 몇년 전부터 활기를 잃고, 성장도 지체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은 정부주도로 급속한 경제개발이 이뤄지던 시절의 유물일 뿐, 칼럼을 쓴 당시 상황에서는 유의미한 전범이 될 수 없었다. 정부를 믿고 따라야 한다느니,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구심점이 정부라느니 하는 국가중심주의적인 대목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경제 엘리트로서 대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식견을 갖추고 있었을 이 총재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터, 그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칼럼을 쓴 시기와 관련해 ‘박근혜 용비어천가’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당시는 김중수 후임 한은 총재를 둘러싼 하마평들이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칼럼에 녹아 있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발전에 대한 찬사, 정부에의 무조건적인 믿음, 정치권(국회)에 대한 불신 등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코드’와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진다. 소신에 따른 글인지, 아부에 따른 글인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칼럼 게재 석달쯤 뒤 이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차기 한은 총재로 지명됐다.

아래는 칼럼 전문.



한국경제, 初心 되살려야 할 때다

요즘 들어 부쩍 한국경제의 일본화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저성장·저물가에 급속한 고령화 현상이 과거의 일본을 쏙 빼닮았으니 그 같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어봐야 정신 차릴 건가’ 하는 준엄한 경고가 가슴을 찌른다.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는 비판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상황은 아니다. 우리 경제는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한 수출의 호조에 힘입어 꾸준히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내년에는 4% 성장도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희망적인 지표 전망과 달리 실제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체감경기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체감경기의 부진이 지속되면 축소 지향적 경제행위가 유발되면서 경제의 활력 회복이 어려운 것은 물론 정부 통계나 정책에 대한 불신을 가져와 정책의 유효성마저 떨어뜨리게 된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를 통해 앞날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처방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규제의 획기적 완화,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제고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안이 봇물을 이룬 지 오래고 정부도 이의 실행에 부단히 노력중이다. 그러나 정쟁만 일삼고 있는 정치권은 그렇다 치고 이 기회에 경제를 보는 우리 모두의 의식에 일대 전환이 있지 않으면 이들 정책 처방도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업가정신 존중,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먼저,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를 신뢰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력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은 결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연대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돛의 역할을 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소상히 국민에게 밝히고 확실한 성장 전략과 실천 의지를 일관되게 보여줌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의 신뢰가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의 추진동력이다.

그리고 성장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업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끊임없는 혁신과 철저한 이윤 동기에 바탕을 둔 창조적 기업가정신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기본원리가 가끔 간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배 없는 성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 패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다 승자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규제 정책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활동 반경이 넓혀지는 데 상응해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장의 과실을 근로자와 좀 더 나누고 중소 자영업자를 협력 상대로 인정해 동반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 노조도 조직 울타리 바깥 사람들의 희생에 더 이상 눈감아서는 안된다. 1980년대 초에 지금의 우리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했던 네덜란드가 노·사·정 대타협의 산물인 ‘바세나르협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1960년대 모두가 가지지 못했던 그 시절, 잘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노력한 결과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성취를 이뤄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금모으기운동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는 경고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지 이해되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그렇게 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어려울 때일수록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교훈만을 곱씹어 보게 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