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홍기영칼럼] 청년실업은 ‘회색 코뿔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위험은 방심을 노린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는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이 크지만 잊기 쉬운 위험을 뜻한다.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지속적인 경고음에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대응 조치를 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뻔히 알면서도 화를 자초한다. 결국 재앙이 빚어진다. 예측하기 힘든 돌발 위험인 ‘검은백조(black swan)’와 비교된다.

‘일자리 코뿔소’가 한국 경제를 위협한다. 올해 초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단기적으로 일자리,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산 문제가 회색 코뿔소”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정부는 고용 쇼크를 막기 위해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 실질소득 1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하는 직원에 △보조금 지원 △세금 감면 △전월세 자금 대출이 핵심이다.

문재인정부는 국정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다. 그러나 청년 취업난은 되레 악화되는 추세다. 청년실업률은 2008년 7%대에서 2018년 2월 9.8%로 치솟았다. 2월 취업자 수 증가 폭은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5년간 29차례 재탕·삼탕식 청년 취업난 대책이 발표됐다. 막대한 재정자금을 투입하고 각종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공공부문 일자리에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말았다. 지난해 ‘일자리 추경’으로 만든 성과의 절반이 60~65세 노년층 일자리였다. 양질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청년 취업대란은 구조적인 문제다. 노동시장에서 수급 불일치가 심각하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인 25세 이상 ‘에코붐’ 세대가 취업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온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 인구는 2021년까지 크게 늘어난다. 반면 내수 부진에 제조업 구조조정까지 겹쳐 기업 일자리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다. 게다가 중소기업 인력 미스매치는 난제 중의 난제다. 중소기업 10곳 가운데 8곳은 심각한 구인난에 허덕인다. 중소기업에서 일손이 부족한 일자리가 20만개에 달한다. 청년들은 3D 업종 중소기업을 외면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40%에 육박한다. 첫 직장이 평생을 좌우한다. ‘낙인효과’ 때문에 청년들은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만 매달린다.

친(親)노동 정책과 반(反)기업 정책을 시정하고 규제를 혁파하는 게 정답이다. 일자리 창출에 역행하는 사회 환경과 노동정책을 확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되레 고용을 저해하는 자충수가 된다. 일자리안정자금을 신청한 근로자는 15일 현재 정부 목표치의 50%에도 못 미친다. 잘못된 공약과 대책은 시정하라.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채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이직과 전직이 원활한 노동유연성 확보가 관건이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혁파해야 한다. 프랑스병 치유를 통해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노동개혁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일자리는 가계소득의 원천이자 기업의 생산 기반이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공정위·국세청·검찰의 기업 압박, 정부와 재계의 소통 단절은 기업인 사기를 꺾는다. 기업마다 고임금과 규제를 못 이겨 생산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올인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제조업·수도권 규제를 없애고 IT와 서비스 융합을 촉진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상생경영을 다시 점화해야 한다. 노동 수요·공급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교육제도 개편도 절실하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0호 (2018.03.21~2018.03.27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