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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文대통령은 왜 개헌을 밀어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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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정부의 개헌안 초안이 발표되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국민헌법자문안을 전달받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개헌안 초안이 발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부 개헌안 초안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1년이 넘도록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고 나아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의 개헌 준비마저도 비난하고 있다. 이는 책임 있는 정치적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아직도 자신들의 개헌안을 당론으로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정부 개헌안 초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하자는 것이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과 모든 후보가 함께했던 대국민 약속이었는데 국회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 언급을 종합해보면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져야 하며 자신이 약속을 지키려 하는 것에 대한 야당의 비난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국민이 이 같은 생각에 대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얘기가 모두 맞다 해도 100% 동의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할 권한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도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고 이를 통과해야 국민투표에 붙여진다. 때문에 국회와의 긴밀한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의 상황이 과연 그럴까? 절대 아니다. 현재로 보면,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움직임에 대해 찬성하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뿐이다. 여당과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정의당과 민주평화당마저 부정적이다. 야당이 반대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면 정치권과 사회가 더욱 분열돼 싸움만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정작 중요한 개헌안 내용은 사라지고 개헌이냐 아니냐의 싸움만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야당이 이렇게 비판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국회에 넘긴다 해도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를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그렇게 개헌을 밀어붙이는가.

그 이유를 추론해보면 이렇다.

청와대와 여당이 개헌을 추진하는 이유로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려 하는데 정치권은 스스로의 주장을 뒤집으며 반대만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시켜 청와대의 정국 주도권을 강화시키려는 포석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즉, 정치권을 개헌세력 대 호헌세력으로 나눠 호헌세력은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는 구태에서 못 벗어난 정치세력으로 낙인찍고 반대로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새 정치세력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정국의 주도권을 보다 확실히 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정당과 정치세력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청와대와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서도 정국 주도권을 잡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같이 정치권을 개헌세력 대 호헌세력으로 나누면 자칫 국회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가뜩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어가고 있어 그 존재감이 점점 상실되는 상황이고 이런 상태에서 야당마저 구 정치세력으로 몰리면 국회의 존재감마저 상실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의민주주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대의민주주의가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이번 정부 개헌안 초안에 포함돼 있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에 의해 더욱 뚜렷해진다.

국민소환제란 국민파면 혹은 국민해직이라고도 한다. 선거로 선출된 대표 중 유권자들이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의원을 임기가 끝나기 전 국민투표에 의해 파면시키는 제도다. 지금처럼 정치권이 욕먹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대의민주주의 원칙과 일정 부분 배치된다.

선출직 의원이 문제가 있다면 대의민주주의 아래서는 다음번 선거에서 낙선시키면 된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면 감옥에 보내면 된다. 이런 원칙 말고 별개로 국민소환제를 실시해 임기 중간에 이들을 끌어내리려 한다면 상당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될 터다. 즉, 국민의 정치 참여 과잉이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고,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현재 주민소환제가 실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민소환제는 지방 공무원에 한해 적용되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 원칙과의 연관성이 국민소환제보다는 덜하다. 대의민주주의가 약화되면 의원들은 의회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며 인기영합주의로 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정당과 국회의 가능은 훼손된다.

또 선출직 공무원에게 신분상의 안정성을 제공하지 않을 때 현대사회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든 국가적 과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치 본연의 기능이 상실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정치 과잉과 현실을 무시한 즉흥적 정책 결정이 남발될 가능성마저 있다.

개헌안 초안 내용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이 있다. 바로 대통령 ‘4년 연임제’ 부분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나 4년 연임제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통령 4년 연임제와 4년 중임제는 차이가 있다. 대통령 4년 연임제는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서 이기면 또 한 번 대통령을 할 수 있지만 더 이상은 대통령을 할 수 없는 제도다. 즉 연이어 두 번만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연임제다. 대통령 중임제는 대통령을 하다 한 번 쉬고 차차기 대선에 또 출마해서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번의 임기를 마친 이후 한 번 쉬고 또다시 대통령이 됐는데 이것은 대통령 중임제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대통령 중임제는 3선 이상을 금지한다든지 아니면 재선 이상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필요하다.

이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만든 개헌안 초안은 대통령 중임제가 아닌 연임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중임제를 주장했다. “4년 중임제를 해야만 2022년에 지방선거와 대선을 동시에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위원회와 대통령의 손발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의 논리는 이렇다.

“대통령 임기 기간 중 3번의 전국 선거를 치르고 그 3번의 전국 선거가 주는 국력의 낭비라는 것이 굉장한데 개헌을 하면 그 선거를 2번으로 줄이고 대통령과 지방정부가 함께 출범하고 총선이 중간평가 역할을 하는 식의 선거 체제랄까, 정치 체제가 마련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는 것보다는 대통령과 지방정부 임기를 맞추고 총선은 중간평가 역할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정치제도 면에서는 합리적인 것이거든요.”

이런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총선과 지방선거가 그렇게 분리될 수 있는 선거인가.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르면 대선에서 유리한 정당이 지방선거에서도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 속성상 그렇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각 지역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높아지고 조직의 세(勢)도 불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런 상황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총선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를 감안하면 자칫 특정 정당이 행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입법부를 동시에 지배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비효율적이라 보여도 선거가 자주 있어야만 대통령에 대한 경고를 자주 줄 수 있음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합해보면 개헌안 초안과 대통령의 언급은 좀 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개헌은 빨리 해치워야 할 숙제가 아니다. 약속을 어기더라도 좀 더 심사숙고한 이후 결정해야 할 백년지대계다. 이런 차원에서 청와대와 정치권의 심사숙고하는 모습,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0호 (2018.03.21~2018.03.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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