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단교 9개월’ 카타르의 생존법…사막에 목장 짓고 바닷길 개척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4시쯤(현지 시각) 카타르 수도 도하의 웨스트 베이(고층 빌딩 밀집 지구)에 있는 대형 쇼핑몰 ‘시티 센터’ 안 수퍼마켓. 채소와 과일, 고기, 달걀 등을 파는 신선식품 코너는 저녁거리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냉장 유제품 코너에는 카타르 사막의 목장에서 생산된 여러 브랜드의 우유, 이란과 덴마크 등에서 수입된 우유가 진열돼 있었다. 카타르산 유제품 브랜드인 ‘밸라드나(Baladna)’ 우유는 1ℓ에 6.75리얄(약 1980원)로, 이란산 수입 우유 ‘칼레(Kalleh)’ 1ℓ짜리 제품(4.50리얄)보다 50% 비쌌다. 가격은 더 비싸지만 사람들은 현지 목장의 젖소에서 짜낸 신선한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조선일보

2018년 3월 13일 카타르 수도 도하의 대형 쇼핑몰 ‘시티 센터’ 안 수퍼마켓에 아프리카와 유럽 등에서 수입된 과일과 채소가 진열돼 있다. /김남희 기자


카타르가 지난해 6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이집트로부터 단교를 당한 지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4개국은 테러단체 지원과 친(親)이란 정책 등을 이유로 들어 카타르와 단교하면서 하늘·땅·바다 통행을 봉쇄했다. 카타르는 아라비아반도의 동쪽에 툭 튀어나온 반도 국가다. 한국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육지는 사우디와 붙어 있다. 사우디는 국경을 폐쇄해 카타르의 유일한 땅길을 막았고 UAE ·바레인·이집트는 하늘길과 바닷길을 막았다.

단교 직후 카타르는 은행에서 예금 수십억달러가 빠져나가고 생필품 사재기가 벌어지는 등 혼란에 빠졌다. 단교 선언 국가들의 고립 작전이 먹혀드는 듯했다. 그러나 카타르는 경제·사회적으로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꿔 국가 개조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5일 낸 보고서에서 “단교와 봉쇄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일시적이었고 카타르가 받은 직접적인 경제적 충격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2018년 3월 13일 카타르 수도 도하의 고층 빌딩 밀집 지구 ‘웨스트 베이’의 모습. 곳곳에서 고층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김남희 기자


◇ 우유 수입 막히자 젖소 실어 날라 사막 목장서 직접 생산

도하에서 북쪽으로 50㎞ 떨어진 도시 알코르. 이곳 사막 한복판에 있는 ‘밸라드나 목장’에서는 젖소 수천 마리와 양, 염소가 자라고 있다. 밸라드나 목장의 젖소는 단교와 경제 봉쇄에 맞선 카타르의 저항을 상징한다.

이 목장을 소유한 카타르 민간 기업 ‘파워 인터내셔널 홀딩(PIH)’은 단교 5주째인 지난해 7월 11일, 카타르 국영항공사 ‘카타르 항공’ 비행기에 독일 젖소 165마리를 실어 카타르로 들여왔다. 몇 달 안에 수입이 예정된 총 4000여마리의 젖소 중 첫 도착분이었다. 카타르는 단교 전까지 우유와 유제품의 대부분을 사우디에서 수입했다. 사우디산 우유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카타르는 터키와 이란 우유를 대체 수입하고 동시에 자체 생산에도 뛰어들었다.

조선일보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북쪽으로 50㎞ 떨어진 도시 알코르의 사막에 있는 ‘밸라드나 목장’에서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수입한 젖소에서 우유를 짜내고 양과 염소도 기르고 있다. /밸라드나 제공


인구 270만명의 작은 사막 국가 카타르는 국토의 6%만 경작이 가능하다. 식료품을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유제품뿐 아니라 설탕, 고기 등 식료품의 80%를 사우디와 UAE에서 주로 수입했다. 그랬던 나라가 사막에 첨단 냉방시설과 습도·물 관리 시스템을 갖춘 목장을 만들고 직접 생산에 나선 것이다.

모우타즈 알 카야트 PIH 회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젖소를 1만마리 정도 더 수입해 올해 4월까지 하루 우유 생산량을 300톤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카타르의 하루 우유 소비량을 충족할 수 있는 양이다. 국내 수요를 채우고 남는 우유는 수출도 할 예정이다. 지난 11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애리조나주, 위스콘신주에서 길러진 3000마리가 넘는 젖소가 배로 카타르에 도착했다.

조선일보

2018년 3월 13일 카타르 수도 도하의 대형 쇼핑몰 ‘시티 센터’ 안 수퍼마켓에 카타르에서 생산된 밸라드나 우유(가운데 기둥 기준 왼쪽)와 이란과 덴마크 등에서 수입된 우유가 진열돼 있다. /김남희 기자


카타르 낙농업의 대표 기업으로 떠오르면서 밸라드나는 올해 카타르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만난 라시드 알 문수리 카타르 증권거래소 최고경영자는 “경제 봉쇄 후 식료품·의약 부문에서 기회가 더 많이 열리고 있다”며 “밸라드나는 카타르 우유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 크다”고 말했다.

◇ 자체 생산·개방·다각화로 경제 봉쇄 맞서

유제품 직접 생산은 카타르 왕실이 추진하는 ‘자급자족(self-sufficiency)’ 경제 만들기의 핵심이다. 카타르 정부는 지난 14일 2차 5개년(2018-2022) ‘국가개발전략’을 발표했다. 333쪽짜리 문서에는 2022년까지 국내 가축 수요의 30%와 어류 수요의 65%를 자체 충족해 식량 안보를 강화한다는 목표가 담겼다.

조선일보

카타르 경제통상부와 환경부는 이날 국내 생산 농산품 구매를 장려하는 ‘카타르 팜스(Qatar Farms)’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토마토, 가지, 브로콜리 등 카타르에서 재배한 농산품을 수입 농산품보다 50% 낮은 가격에 판매해 국내산 농산품에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지역 농가의 판매 통로를 넓혀주는 취지다. 알-미라, 까르푸, 루루, 패밀리 푸드 센터 등의 대형 수퍼마켓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카타르 정부가 목표로 세운 자급자족 경제는 단순히 국내에서 모든 걸 만들어 쓰겠다는 뜻은 아니다. 자체 생산과 함께 나라를 더 개방하고 교역로를 확대하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카타르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80개국 국민이 비자 없이 카타르에 입국할 수 있게 했다. 비자 면제 유효기간과 무비자 체류 기간은 국가별로 다르다.

조선일보

2017년 9월 카타르 수도 도하 시내에서 남쪽으로 차로 약 20분 떨어진 곳에 카타르의 새 항구 ‘하마드 항구(Hamad Port)’가 정식 개장했다. 사진은 2018년 3월 14일 하마드 항구의 모습. /김남희 기자


카타르는 단교 사태로 해상 통행이 막힌 후에도 교역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개발비 74억달러(약 8조원)짜리 새 항구 ‘하마드 항구’가 도하 남쪽에 문을 연 덕분이다. 예전에는 일부 큰 선박이 카타르 항구에 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UAE의 제벨알리 항구에 먼저 정박해 화물을 더 작은 배로 옮겨 실은 후 카타르 항구로 가야 했다.

그러나 하마드 항구가 운영을 시작한 후로는 선박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배가 하마드 항구를 통해 드나든다. 봉쇄 조치 후 외국과의 직접 교역로 개척을 서두르면서 봉쇄가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조선일보

모하메드 빈 살레 알 사다 카타르 에너지·산업 장관이 2018년 3월 15일 카타르 수도 도하의 에너지·산업부 청사에서 카타르의 에너지 산업과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남희 기자


2차 국가개발전략은 원유·가스에서 벗어난 경제 다각화와 민간 부문 육성 의지도 담았다. 카타르는 세계에서 천연가스 매장량이 가장 많다. 지금까지는 천연가스를 팔아 벌어들인 ‘가스 머니’로 주로 먹고살았다.

모하메드 빈 살레 알 사다 카타르 에너지·산업 장관은 15일 “앞으로의 초점은 다각화를 통한 경제 성장”이라며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원칙 아래 기업가 생태계를 만들고 인적 역량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하=김남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