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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천운영의 명랑한 뒷맛]이 봄, 목욕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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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빨래를 했다. 봄기운이 확연하여. 봄을 맞는 우리의 자세, 소지. 이번 봄엔 유난히 묵은 빨래를 모조리 다 꺼내 빨아 널고 싶어진다. 따스한 기온으로 은근하게 밀려든 봄이 아니라, 저 밑바닥부터 들썩이며 솟구쳐 나온 봄이어서 그럴까? 봄은 도적처럼 당도한다더니, 도처의 도적 떼들이 한꺼번에 봄을 몰고 온 느낌이다. 이불을 널고 또다시 세탁기를 돌리고 겨울옷을 집어넣고 얇은 옷들을 꺼내 걸다 보니, 지난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웠었던가? 그것이 지난해였던가? 언젠가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겨울이 있었는데.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겨울은 대부분 추웠던 걸로 뭉뚱그려진다. 그래도 봄은 왔고 묵은 빨래를 했으니 이제 내 몸의 묵은 때도 벗어야지. 소지의 마지막은 목욕탕으로.

경향신문

유년의 겨울을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지금보다 훨씬 추웠었던 것만 같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창문에 맺힌 성에꽃. 코끝을 쌩하게 만드는 냉기에 이불을 바싹 끌어당기고 누워 있던 방.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세면대로 나오면 밤새 연탄보일러 위에 얹혀 있던 양동이 속 더운물은 식구들이 다 써버리고, 나는 고양이세수만 겨우 한 채 학교에 가곤 했다. 지금이야 언제라도 뜨끈한 물로 목욕하고 세수를 하지만, 그때는 한 달에 두어 번 가는 목욕이 아닌 이상 겨울이면 늘 고양이세수. 뜨거운 물에 손을 오래도록 담그고 있으면, 따뜻한 물이 식으면서 팔뚝부터 전해져오는 쌈박쌈박한 기운. 그것은 이젠 목욕탕에 갈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시절의 목욕탕 풍경. 작정하고 모아온 빨랫감들을 풀어놓는 여자들. 그러면 되니 안되니 실랑이를 벌이는 때밀이와 아줌마들. 탕 위를 둥둥 떠다니는 때들과, 옆 사람 엉덩이가 맞닿을 정도로 북적거리는 알몸의 여자들과, 도망치는 아이들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어머니들의 악다구니, 카랑카랑 울려대는 어린애들의 울음소리, 양손에 때타월을 끼고 때를 밀다가 종종 유난스럽게 손뼉을 치며 텅텅 소리를 내는 때밀이들의 추임새까지.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이제 충분히 깨끗해진 것 같은데, 밀고 닦고 다시 돌려세워 닦는 엄마의 때수건이 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본전을 뽑고 가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경연장, 그 겨울의 목욕탕은 작은 전쟁터 같았었다. 그 전쟁터 한쪽에서 알몸의 엄마 몸에 안겨 머리를 감던 감촉만은 여전히 생생하게 아름답다.

습작 시절, 강원도 어느 즈음을 헤매다 들어갔던 목욕탕도 기억난다. 사나흘 바람이나 쐰다고 나온 걸음이, 어쩌다보니 더 깊은 촌구석으로 향하며 길어졌다. 산 깊숙한 곳 참숯 굽는 공장의 매캐한 연기도 맡았고, 우시장의 북적거림도 보았고, 어획량이 줄어 썰렁한 항구에도 갔다. 그땐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주로 걷거나 가끔 버스를 탔다. 숙박은 민박집에서 해결했다. 여비도 문제였지만 다니는 곳마다 그럴싸한 숙박시설이 없기도 해서였다. 참으로 대책 없이 다닌 여행이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겨울바람에 볼이 터서 쓰라렸고, 사흘 여장을 꾸린 탓에 변변히 갈아입을 옷도 없어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기어이 몸 여기저기 근질근질 각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는 역시나 목욕탕. 물어물어 목욕탕을 찾아갔다.

먼저 내복을 빨아 사우나실에 널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이미 널려 있던 아줌마들의 펑퍼짐한 속옷들 때문이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목욕탕 주인의 눈치를 보며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탕 안에는 사우나실에 들락거리는 살집 좋은 아줌마들과 할머니 몇이 있었는데, 아줌마들은 소리 높여 서로를 부르기도 하고 쩌렁쩌렁 울리도록 웃어대거나 냉탕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기도 했다. 도심의 사우나나 찜질방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언성을 들을 만도 했는데 거기선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사우나실을 들락거리던 거구의 여자가 갑자기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더니, 순식간에 때타월을 빼앗아 등과 팔 곳곳을 밀어주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연신 고맙다고 하는 걸 보아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닌 듯했다. 비누칠까지 마무리해 준 그 여자가 이번엔 내게로 다가왔다. 아가씨 등 밀 사람 없지, 이리 줘봐. 아까부터 봤는데 그렇게 조물조물해서 때가 밀리겠어? 만류할 틈도 없이 거구의 여인은 다짜고짜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 체중을 실어 밀어대는 손매가 맵기도 참 매웠다. 그러다 내 등짝 다 까지겠어요. 말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 때가 민망해 고개만 푹 숙이고 등을 맡기고 있다보니 문득, 다음엔 내가 저 거구의 여자 등을 밀어야 한다면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내 때를 보인 것도 민망한데, 남의 때까지 굳이 볼 필요가 있나. 그런데 그녀는 내 등을 꼼꼼하게 다 밀고 물까지 끼얹어주더니, 자신은 일행이 있으니 괜찮다며 다시 휙, 사우나실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등짝이 아니라 내 속좁음이 쓰라렸다. 목욕탕을 나올 즈음 널어놓은 내복은 바싹 말라 있었고, 나는 훨씬 개운해진 기분으로 다시 배낭을 둘러멨다. 낯선 고장의 낯선 목욕탕에서 나오던 그날 오후, 겨울 볕이 봄인 듯 따사로웠다.

그리고 이 봄날의 목욕탕. 나는 엄마와 함께 나란히 세신사 목욕대 위에 누웠다. 돈을 주고 때를 민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 극구 사양하는 엄마를, 이미 지불한 돈을 돌려받기도 민망하다며 우격다짐으로 눕히고서는, 앞으로 뒤로 옆으로 나란히 같이 움직이며 타인에게 몸을 맡겼다. 마음 같아서는 오래전 엄마가 내 몸을 닦아주던 시절처럼, 알몸의 엄마를 알몸의 내가 품고 때를 밀고 어깨를 주물러 주고 싶었지만, 그냥 그렇게 목욕탕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울컥하고 서글퍼졌다. 목욕탕에서 나와 꿀을 넣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를 청해 들었다. 내 어릴 적보다 더 추웠던 내 엄마의 겨울날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함께 목욕을 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는 앞으로 어떤 봄이 도래할까. 그리고 우리의 봄은.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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