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경제와 세상]인구절벽, 지역균형 발전으로 풀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며칠 전 통계청은 ‘2017년 인구동향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05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추계치를 발표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낮은 수치이다. 통계청의 2065년 장래인구추계에서 최소추계인구였던 3666만명은 2050년 합계출산율을 1.12명으로 가정한 것인데 지난해에 그보다 훨씬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것이다. 210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고 700년 후에는 통계상으로 아예 멸종한다는 추계마저 나오고 있어서 국가소멸 문제는 국가위기 그 자체이다.

경향신문

대통령 소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설치하고 2010년 이후 저출산 대책으로 거의 12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합계출산율 수치에서 보듯이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전히 저출산이나 인구소멸의 문제가 국민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년 전 일본 국토교통성을 방문했을 때 2100년의 일본 인구가 1868년 메이지유신 때 인구인 3330만명과 유사한 3770만명으로 급락할 것이라는 총무성 추계 그래프를 보여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후 일본은 인구 확보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강력한 추진체계를 구축하였다. 2050년 이후 인구 1억 총활약사회를 만들기 위해 1억총활약담당상이라는 전담장관을 임명한 것이나, 2060년 추계인구 8674만명을 1억명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본부를 설치하고 전담장관을 둔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책은 주로 육아나 주거, 취업과 같은 외적인 환경 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출산과 육아 부담을 줄여주고 직장이 안정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의 사회경제 구조와 인식체계를 그대로 둔 채 여건 조성만 한다고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을까?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국민들이 현재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OECD가 ‘2017 웰빙지수’를 통해 조사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개인 삶 만족도는 조사 대상 30개국 중 꼴찌였다. 행복의 가장 나쁜 극단이라 할 수 있는 자살률도 인구 10만명당 25.6명에 이르러 역시 OECD에서 가장 높다. 현재 자신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니 자식에게 자신들이 겪었던 불행과 부담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출산을 줄이거나 결혼마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고 사회경제적 여건이 개선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유일한 승자와 너무 많은 패배자를 양산해내는 경쟁구조에 원인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치획일주의와 단일한 목표를 기준으로 한 서열화는 과도한 경쟁을 낳을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화와 대학 입시경쟁, 의사와 법조인, 공무원 열풍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법은 조지프 피시킨이 <병목사회>라는 명저를 통해 잘 제시해주고 있다. 그는 이른바 기회균등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각종 제도와 정책들이 실제는 엄청난 격차와 좌절을 유발하는 병목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병목들을 낮추거나 다원적인 기회구조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인생 전반에 걸쳐 새로운 성공의 경로를 추구할 여지를 더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가치 획일주의와 서열화의 문제점은 국토도시 공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수도권과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지역이 모든 것을 가졌으며,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각종 성공의 경로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과 격차를 만들어내는 병목이 된다. 이 ‘기회의 땅’의 공급이 제한적이고 대체불가능하다면 이 지역의 주택이나 토지를 둘러싼 경쟁으로 이어져 최근의 강남주택과 같이 가격폭등을 낳게 된다.

우리는 병목을 우회하는 경로를 많이 만들고 기회를 다원화하듯이, 공간에서도 기존의 부유공간을 확장하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의 땅을 충분히 만들어내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간적 서열을 뛰어넘어 지역에서 일자리와 투자, 인재가 선순환하는 창의적인 지역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역은 모든 구성원이 승자가 되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국가균형발전 정책이고 지역재생 뉴딜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역균형발전을 인구절벽 해소뿐만 아니라 혁신·창업국가, 일자리경제, 자치분권 실현과 함께 복합·혁신과제로 설정하고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접근방식은 아주 적절하다. 이제부터 남은 과제는 강력한 추진력이다. 국민적인 공감을 확보하고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해야 비로소 성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