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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공소시효의 진짜 의미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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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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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49]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다. 어둠 속에 묻혀 영원히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실이 있다.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극단의 대표로서, 교수로서, 인기 배우로서, 유력한 정치인으로서 쌓아올렸던 모든 영광들이 한순간 무너진다. 그것이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할 민낯이 있다.

이들에게 "공소시효"는 비로소 잠 잘 수 있게 하는 희망이다.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날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겹겹이 쌓인 세월의 적층을 그대로 두고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지 않겠다는 말 아닌가? 달콤한 희망이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그 오랜 세월 어둠 속에 숨 죽여 있던 피해자들에게 공소시효는 그 고통을 영원히 묻어 버리게 하는 절망이지 않을 수 없다. 정의의 추구를 생명으로 하는 법이 왜 '시간이 지났다'라는 사실 앞에서 그 칼날을 멈추는 걸까?

헌법재판소는 "범죄에 대하여는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반드시 하는 것이, 즉 범인필벌이 형사사법적 정의에 부합한다. 그러나 공정한 재판에 의한 공정한 처벌이 형사사법적 정의의 실현이라고 할 것인데, 국가가 공소제기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증거의 산일 등으로 공정한 재판을 못하게 되는 것은 국가에게도 책임이 있으므로 죄질에 상응한 일정 기간 동안 공소제기를 하지 아니한 채 경과하면 소추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형사처벌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공소시효의 제도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1996.2.16. 96헌가2,96헌바7,96헌바13 전원재판부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의 위헌여부가 문제됐던 사건에서다). 역사적으로 19세기 이후에 공소시효가 서구에서 정착되었고, 오늘날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법제는 공시시효 제도를 두고 있다고 하니 공소시효 제도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중죄를 범한 범죄인이라고 증거재판주의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법. 시간의 흐름 앞에 유죄를 인정한 증거는 사라지고 그 증거의 힘은 약해지게 마련이다. 공소시효는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재판을 할 바에야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아예 재판에 부치지 못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범죄인이 공소시효의 혜택을 입게 된 것이, 법이 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해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간에 걸쳐 증거 수집을 게을리하고 범죄인을 법정에 세우지 못한 국가기관의 게으름에 기소권 박탈이라는 법적 효과를 부여한 것이 공소시효다.

긴 기간이 지난 사건을 시간의 흐름 앞에 흘려보내자라는 공소시효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는 점 역시 강조하고 싶다. 시간 앞에 잊으라 강요하더라도 결코 잊어서도 안 될 것들이다. 인권이 심각히 유린된 역사적 경험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의 피해가 그 중 하나겠지만 성폭력 피해 역시 이에 못지않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미투" 운동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성적 폭력의 피해 사실이 사회적 관계와 압력 때문에 오랫동안 어둠 속에 은폐돼 왔다. 그동안 누적돼 왔던 범죄 사실이 미투 운동에 힘입어 한꺼번에 대낮의 공간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 오히려 피해자의 피해는 점증돼 왔을 것임에도 항간에는 "왜 이제야?"라며 시간의 흐름에 기억을 흘려버리라 하는 이야기도 있다. 공소시효를 연상하며 피해의 폭로에 반감을 갖기도 한다. 성폭력이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살인행위라는 점을 간과한 탓이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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