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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세계타워] 행정의 나비효과와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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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출세 위해 임기 중 사퇴는 / 주민들과의 약속 저버리는 행위 / 거쳐 가는 자리로 생각하는 후보 / 이번 지방선거서 표로 심판해야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진 지난 1월 중순 어느 날 한 중소도시의 시골 마을을 찾았다. 전형적인 농촌으로 시청사가 있는 시내에서 12㎞쯤 떨어진 곳이다. 주민들은 도로변 정류장에서 1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에는 주민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가 쳐져 있었다. 지난해 1월에는 보이지 않던 시설물이었다. 버스가 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앞면은 투명비닐로 만들어졌다. 정류장 안에는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듯 대부분 어르신이었다. 바람막이가 설치되기 전에는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도시처럼 버스가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시골 주민들에게는 시내 한번 나가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람막이가 설치된 후 노상에서 추위에 벌벌 떠는 불편을 덜 수 있게 됐다. 주민들은 시청에서 설치해 줬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014년 서울 관악구에서 첫선을 보인 온기 텐트가 전국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지금은 자치단체별로 차별화한 온기 텐트를 설치하면서 고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처럼 됐다. 지난겨울에는 정류장에 온돌의자까지 등장했다. 주민을 위한 행정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다.

2013년 서울 동작구에서 처음 등장한 한여름 땡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막도 ‘히트 행정’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보다 못한 구청장이 창고에 보관 중인 행사용 천막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더위에 지친 주민들이 땀을 식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늘막 아래에서 뙤약볕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큰 만족도를 보였다.

전국 곳곳에는 디자인과 편의성을 함께 갖춘 다양한 온기 텐트와 그늘막이 등장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생활 밀착형 행정이다. 주민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많은 국민이 혜택을 입고 있다. 삶의 질 개선을 우선하는 지방자치제의 순기능으로 볼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의 동 복지허브화 사업은 정부가 벤치마킹해 전국으로 확산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고 한반도 평화에 밀알을 제공한 2018평창동계올림픽 또한 강원도가 강릉, 평창, 정선과 힘을 합쳐 유치했다. 올림픽 유치를 선언할 때 체육계는 물론 중앙부처도 코웃음을 쳤지만 역대 최고의 성공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는 18일 2018평창동계패럴림픽이 끝나면 지방선거 국면으로 돌입한다. 벌써 각 지역에는 예비후보자들이 지역을 위한 일꾼을 자임하며 현수막을 내걸고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더 높은 자리를 노리며, 체급을 올려 도전하기 위해 임기가 3개월이나 남았음에도 사퇴를 선언하는 단체장들도 줄을 잇는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살림꾼을 뽑는 풀뿌리 자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생활밀착형 행정을 고민하고 주민과 소통하는 일꾼이 지자체에는 필요하다. 그래서 지방자치제가 시행됐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버젓이 남은 임기를 사퇴하는 것은 주민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퇴 이유를 그럴싸하게 포장할지언정 속 내용은 현직을 디딤돌로 이용하겠다는 것의 다름 아니다.

세계일보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현재 광역자치단체 3곳의 수장도 공석이니 뭐라 말하겠는가. 이낙연 전남지사는 국무총리직을 위해 13개월이나 남은 임기를 사퇴해 행정공백을 초래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해 4월 경남지사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홍 대표는 도지사 보궐선거를 피하기 위해 공직자 사퇴시한을 불과 3분 남기고 사퇴서를 제출하는 꼼수를 부렸다. 미투 바람에 넘어간 안희정 충남지사의 어처구니없는 사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인 도민의 몫으로 남게 됐다.

오는 6·13지방선거에서는 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 자리를 거쳐 가는 자리로만 생각하는 후보는 논에서 피를 뽑듯이 골라내야 한다. 주민들은 작더라도 배려하는 행정에 감동한다. 주민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준비가 안 됐다면 일찌감치 단체장 출마의 뜻을 접어야 한다. 임기 공백은 지역발전을 저해한다. 주민들은 표로 냉철하게 심판해야 한다.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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