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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분유로 첫째를, 모유로 둘째를 키운 엄마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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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첫째에게 모유를 많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둘째는 밤낮으로 모유수유를 하려고 애썼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보엄마 잡학사전-32] '완모(완전 모유 수유)'는 나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나는 첫째가 생후 120일 되던 날 단유를 했다. 사실 단유랄 것도 없었다. 젖 양이 많지 않아 분유에 의존했고, 단유 후에도 아이는 젖을 찾지 않았다. 나는 다만 100일까진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에 엄마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근근이 모유 수유를 이어갔다.

처음엔 나도 '완모'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조리원에서는 초유(분만 후 며칠간 분비되는 노르스름하고 묽은 젖)가 많아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을 샀고 간호사들은 완모도 문제 없을 것이라며 설레발을 쳤다. '조리원에서는 무조건 쉬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새벽부터 자정까지 쉬지 않고 수유를 했고 틈틈이 유축기로 모유를 미리 짜 저장했다. 수유한 지 1분도 안돼 잠드는 아이를 붙잡고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수유하며 완모를 향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조리원 퇴소와 동시에 모유 수유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조리원에선 차려준 밥을 먹고 쉬다가 아기가 배고파할 때 수유만 하면 됐지만, 집에 오니 밥은커녕 빵이나 떡으로 끼니를 떼우기 일수였다. 육아뿐 아니라 집안일도 내 몫이 되다 보니 한 시간에 한 번꼴로 젖을 물리는 게 버거웠다.

수유 자세도 자리를 잡지 못해 아기는 늘 배고파 했고 분유를 보충해주면 서너 시간을 내리 잤다. 자주 배고파 깨는 모유보다는 서너 시간 푹 자는 분유가 편했고, 그렇게 나는 완모와 멀어졌다. 하루에 한 번쯤 모유를 먹였을까, 120일까지 버틴 게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실상 '완분(완전 분유 수유)' 아기로 자란 첫째는 다행히 무탈하게 잘 컸다.

둘째는 완모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조리원에서도 푹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모자동실을 쓰는 병원에서는 최대한 모유 수유를 해보고 정 힘들면 그때 분유를 주겠다고 했다. 수유 자세도 잘 안 잡히고 아이도 잘 먹지 못해 분유를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리원에서도 '모유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며 모유 수유를 권장했고, 매일같이 수유 자세를 확인하며 모유 수유 횟수를 체크했다. 분유를 먹이는 엄마는 마치 '나쁜 엄마'인 것 같은 생각에 너도나도 하루 종일 젖만 물렸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리원 퇴소 후에는 구에서 지원해주는 산모돌보미가 3주 동안 집안일 등을 도와줘 첫째보다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모유 수유를 연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내가 2주간 항생제를 먹어야 해 약 3주간 모유 수유를 못 했다. 그렇게 '완분' 아기로 돌아서는가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아기가 빠는 힘이 세서 엄마가 좀 더 노력하면 완모도 가능하겠다는 조리원 간호사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조리원에서 알려준 대로 분유 몇 방울로 아기를 꼬셔 수시로 젖을 물렸다. 첫째에게 모유를 많이 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둘째는 밤낮으로 모유 수유를 하려고 애썼다. 모유 수유 횟수를 늘리고 분유를 줄여가던 차에 다니던 소아과 의사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완모에 도전해보시죠'라며 불을 당겼다. 그렇게 둘째는 '완분'에서 '완모' 아기가 됐다.

완모를 하고 보니 가장 먼저 가계에 변화가 왔다. 분유값이 나가지 않아 한 달에 많게는 10만원가량을 아낄 수 있게 됐다. 외출할 때도 분유와 젖병 등을 챙기지 않아도 돼 한결 간편해졌다. 세 시간 이상 아기를 두고 외출할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장점이 많았다. 아기와 살을 맞대고 교감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모유가 아기 발달에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꼭 완모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하고 싶다. 아무리 모유가 아기에게 좋다고 한들, 모유 수유가 고되고 부담된다면 엄마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유 수유 시간만 되면 우울해진다는, 일명 '슬픈 젖꼭지 증후군'을 호소하는 엄마도 적지 않다. 모유가 나오려면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는데 일부 여성은 이때 즐거움을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불규칙적으로 줄어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육아가 즐겁다. 완모를 못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권한울 프리미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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