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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할 일은 태산인데 수당 20만원…시골 이장도 '열정 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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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커지고 물가 올랐지만 활동비 15년째 그대로

지방의회 등 인상 요구…정부 "신중하게 검토 중"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에 사는 A(52)씨의 명함에 새겨진 직함은 '이장(里長)'이다.

2011년 마을 총회에서 떠밀리다시피 선출돼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그만두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30여 가구 주민 중 제일 젊은 축이다 보니 마땅히 넘겨줄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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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강의 듣는 이장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시간이 갈수록 이장 노릇 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예전 같으면 행정기관의 주민등록조사를 돕고, 민방위 교육 통지나 각종 행정사항 전달만 잘하면 됐지만, 요즘은 주민 욕구가 다양해져 할 일이 그만큼 늘었다.

주민 대표로서 행정과 주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이장은 크고 작은 마을 민원을 챙겨야하는 창구다. 무능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수시로 군청이나 면사무소를 들락거리면서 공무원과 접촉해야 하고, 밤을 새워 마을의 공모 사업 신청서를 쓰기도 한다.

마을 안의 갈등이나 분쟁을 조정하고, 어르신 수발을 드는 것도 당연히 이장 몫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이장이 받는 수당(활동비)은 한 달 20만원에 불과하다. 매달 2차례 열리는 회의 때 2만원씩 회의수당을 받고 명절 때 100%씩 보너스가 나오지만, 공식적으로 쓰는 교통비와 식사비에도 못 미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장 수당을 현실화해달라는 요구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경남 시·군의회 의장단협의회는 지난달 수당 인상 등 이장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정부에 냈다.

농촌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이장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사기가 떨어지고 최말단 행정 서비스의 질이 저하된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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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단 회의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옥천군의회도 지난 23일 이장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청와대와 국회에 보냈다.

군의회는 건의문에서 "지난 15년간 물가는 33% 뛰고 공무원 봉급은 29.5% 인상됐지만, 이장 수당은 그대로"라며 "30만원으로 올려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부에서 이장의 중고등학생 자녀한테 장학금을 줄 수 있게 해놨지만, 대부분의 연령이 60∼70대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성 없는 지원책"이라는 주장도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국 이·통장은 9만3천여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행안부 예산편성 지침에 따라 2004년 월 20만원으로 정해졌다.

수당이 15년째 동결되면서 불만에 찬 이장들이 직접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한 사례도 있다.

작년 9월 경남 거창군 이장들은 "업무시간을 감안한 최저 인건비가 80만∼100만원에 이른다"며 수당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거창군과 의회에 청원서를 내고 집단사퇴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수당 현실화론에 불을 지폈다.

수당을 올리려면 행안부 지침이 바뀌어야 한다. 이·통장 운영은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지만, 수당만큼은 행안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전국을 동일하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통·이장 처우 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중이다. 다만 지자체마다 이장 선출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이장 수당은 월급과 다른 개념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이장 권한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수당까지 올린 경우 권력화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행정안전부 선거의회과 관계자는 "이장 수당을 현실화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지자체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국민 정서와 지자체 재정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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