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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월드피플] 프랑스 여성 인권의 상징 시몬 베이유, 팡테옹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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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프랑스의 낙태 합법화를 주도하며 여권 신장에 앞장서 온 시몬 베이유가 팡테옹에 안치된다. 팡테옹은 18세기 지어진 신고전주의 성당으로, 현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들을 안장하는 영묘로 쓰인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정치가 시몬 베이유가 오는 7월1일 팡테옹 묘지에 남편과 함께 안장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르몽드 등 현지매체가 20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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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테온에는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볼테르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사상가 등 80명이 안치돼있다. 이 중 여성은 단 4명에 불과하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과학자 마리 퀴리, 나치 독일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제르멘 틸리옹과 주느비에브 드골 안토니오즈, 화학자인 남편 마르셀렝 베르틀로를 따라 안치된 부인 소피 베르틀로 등이다. 이로써 베이유는 팡테옹에 잠든 5번째 여성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베이유는 치안 판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5년간 프랑스의 보건장관을 역임했다. 재임 당시 그는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특히 노력했다. 1974년 여성들의 피임약 구매를 용이하게 한 데 이어, 1년 후인 1975년에는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당시 일부 남성 의원들이 낙태를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등 법안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었지만, 그는 “어떤 여성도 낙태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프랑스에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법을 ‘베이유 법’이라 부른다.

베이유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이기도 하다. 17살 때인 1944년에는 가족이 모두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는 고난을 겪었다. 부모와 오빠는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는 다른 두 자매와 함께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베이유는 이때의 경험이 “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강력한 유럽 통합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1979년부터 3년간 유럽의회의 첫 선출직 의장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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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유는 지난해 6월30일 8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장례식은 지난해 7월5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주재 하에 국장으로 치러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인들을 대표해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며 안치 소식을 전했다. 타계 직후 온라인 상에서는 정부에 베유의 팡테옹 안치를 요청하는 청원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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