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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시론] 미투에 고발자 보호와 적폐 청산으로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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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연출가 이윤택씨가 연희단거리패 단원 등에 대한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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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운동과 미투 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강하게 촉발했다. 증언과 연대를 넘어 성폭력을 묵과해온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책임과 관리 주체를 명확하게 하는 여러 논의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문화예술 노동의 특수성과 생산ㆍ재생산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문화 예술계에서 성적 위계를 바탕으로 한 권력구조는 고용과 계약에 근거한 노동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고, 공공ㆍ민간 차원의 예술 교육에서 발생하는 권력 남용과 성폭력에 대한 국가기관의 관리도 형식적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은 지원 대상 집단의 착취 구조와 성폭력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은 고용ㆍ노동 관리 기관, 예술 지원 주관 부처, 예술 교육 관리 감독 기관에게도 분명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긴급한 것은 피해자 보호와 지원 정책이다. 최근 몇 년간 진행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의 추이를 보면 공론화 열기가 사라지고 법적 소송이 진행된 후 가벼운 처벌이나 ‘합의에 의한 성관계’ 등의 판결이 나오면, 가해자는 복귀해서 피해자에게 여러 형태의 보복을 가한다. 소송비용 등을 지원받는다 해도 장기적 소송과 시달림에 대해 피해자는 무방비 상태다. 또 공론화 과정에서는 집단 대응이 가능하지만, 소송 단계는 사건별로 개별 대응이 되어 파편화되고 고립된다. 따라서 사실관계나 법적 판단의 필요성을 존중하되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에서 반복되는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은 특정 집단의 구조적 문제인데 법적 소송으로 이전될 때는 개인 간의 문제로 환원된다. 집단의 구조적 책임은 법적 판단과는 별도의 영역에서 추궁되고 비판되어야만 한다. 피해자 보호와 집단의 구조적 책임을 지속해서 감시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공적 기구의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은 성폭력이 문화와 예술의 아우라로 합리화되고, 착취가 수련의 명목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화예술 생산 구조에서 발생하는 성 착취와 성폭력을 노동 착취와 노예적 착취의 차원에서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방자치 단체, 공공기관, 국가 기구 전반이 개입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한국의 문화예술 생산은 시장에서의 경쟁력보다는 공공 지원 체제와 그에 밀착된 권력 네트워크를 통해서 규모를 키워왔다. 출판 문학 연극 사진 미술 등 문화예술 전반이 규모가 작고, 인적 네트워크가 협소하며, 고용 상태가 열악한데, 각 집단이 집행하는 공공사업과 예산규모는 이에 비해 막대하다. 노예 노동과 제왕적 군림으로 이뤄진 문화예술 생산에 막대한 공공사업과 예산이 결합하니 노예적 착취는 공공사업과 예산의 힘으로 더욱 강화된다. 공공 지원 예산은 집단 구성원의 노예적 상태를 완화하고 복지를 증진하기보다 대표성을 가진 그룹의 제왕적 권력을 강화하는 작용을 했다.

따라서 지방자치 단체, 공공기관, 국가기구는 문화예술 생산에 대해 지원과 협업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노예적 착취, 성 착취, 성폭력을 감시ㆍ조사하고, 문제 영역과 집단, 개인을 지원과 협업에서 배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집행된 사업에 대해서도 해당 집단의 노예적 착취와 성폭력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또한, 성폭력이 예술 교육이나 예술가 양성의 명목으로 수십 년간 정당화되어 왔다. 문화예술계는 공공 및 국가 지원에 기대 가까스로 생산을 지속하는데 기존 권력 네트워크는 주로 교육과 양성 등의 재생산 기제를 통해 확대ㆍ강화된다. 예술단체와 양성기관에서 십여 년이 넘게 성폭력이 만연하도록 교육 관리 감독 기관과 지원 기관은 방관해 왔다. 무엇보다 노예적 착취와 성폭력 문제가 있는 집단과 영역이 예술교육을 비롯한 재생산 체제에 진입할 수 없도록 감시해야 하는 것은 국가 기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구조를 근본에서 변화시키기 위한 책임이 있는 여러 주체의 대안과 정책이 시급하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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