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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충격적인 ‘간호사 태움’, 이젠 바꿔야 할 폭력적 조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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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형 병원에서 일하던 신입 간호사가 설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간호사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태움’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후배를 가르치며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는 악습을 일컫는다. 들들 볶다 못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나왔다. 숨진 간호사의 남자친구는 “태움이 고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2005, 2006년 간호사 2명이 잇따라 자살하며 사회 문제로 떠올랐던 태움 악습이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한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태움은 주로 대형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간호사는 “근무표가 바뀌었는데 알려주지 않았다”고, 다른 간호사는 “선배가 화장을 다시 하라는 지시를 ‘무한반복’했다”고 호소했다. 차트로 머리를 내리치는 등의 폭행도 있었다. 대한간호협회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 7275명 중 40.9%가 최근 1년 새 태움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대개 ‘통과의례’로 여겨 견디다가 몸과 마음이 병드는 간호사가 적잖다고 한다.

의료계의 직장 내 괴롭힘은 간호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몇몇 대학병원에선 교수들의 전공의 폭행 사건이 불거졌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는 명목과 도제식 교육에서 형성되는 ‘갑을관계’가 병원 내 폭력을 낳았다. 그러나 ‘폭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악습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특히 간호사는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최전선에 있다.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의료계 내부의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 그간 숨기기에 급급했던 병원 내 폭력을 대한간호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앞장서 드러내고 엄중히 다루기 시작했다는 게 그 출발점이다. 보건당국은 간호인력 부족이 태움 악습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간호 면허를 보유하고도 40% 가까이 병원을 떠나도록 하는 열악한 근무 환경을 살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계와 서열을 중시하는 직장 내 권위주의 문화를 되돌아봐야 한다. 의료계 내 괴롭힘의 근저에는 명령과 복종에 의해 움직이는 수직적인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도 맞으면서 배웠다”는 말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최근 검찰과 문화계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미투’ 캠페인도 권위적인 조직문화에서 쉬쉬하며 사실상 묵인했던 성폭력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조직 구성원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할 때에만 각종 직장 폭력의 악습을 뿌리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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