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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놀러 오듯 와서 널널하게 일 돈은 적어도 행복은 두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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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주일에 하루 6시간씩 이틀 근무

카페지기 8명 40만원씩 받아

불광역 ‘서울시청년허브’ 건물 입주

서울시 공모사업으로 임대료 싸

행사있는 날 손님 한꺼번에 몰리면

아예 문 잠시 닫고 밖에 나가 쉬어

새 메뉴로 토스트 만들다 엉망 돼도

“한 번밖에 안해봤잖아” 토닥토닥

공동출자해 만든 서초동 카페오공과

주거공동체 우동사가 모태 인연

쪼들리지만 전쟁터 직장 미련 없어

“딴 인생 꿈꾸는 정거장 일터 필요”



협동조합 창문카페

한겨레

수입을 목표로 삼지 않고 자신들의 소통과 행복을 중시하는 창문카페의 카페지기들. 왼쪽부터 오연주씨, 이현정씨, 이지혜씨, 김윤희씨, 김세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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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 ‘서울시 청년허브’ 앞엔 이곳 옛 지명 ‘양천리(兩千里)의 유래’ 비석이 서 있다. 양천리가 북쪽 끝 의주까지 천리, 남쪽 끝 동래까지 천리의 한가운데여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양천리는 노력해봤자 희망이 없으니 따뜻한 해변으로 가 현재나마 행복하게 보낼지, 추위 감수하고라도 도전을 거듭해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야 할지 고민스러운 청년의 갈림길인 것만 같다.

공원 가운데 ‘서울시 청년허브’ 건물 1층에도 그런 갈림길에 선 청년들이 일하는 곳이 있다. ‘창문카페’다. 통계청에 따르면 30살 미만 저소득 청년들의 월평균 수입은 지난해 78만1600원이다. 이 창문카페에서 일하는 카페지기 8명도 평균 1주일에 하루 6시간씩 이틀 일해 40만원가량을 받는다. 통상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저소득 청년들을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라고 부른다. 저소득 청년들은 절망뿐이고 어떤 기쁨도 있기 어렵다는 ‘믿음’이 깔린 호칭이다.

설거지 밀려도 좀 쉬어도 눈치 안봐

그런데 이곳 카페지기들은 그 믿음을 배신한다. 매일 이 건물에 드나드는 수백~천명의 사람들은 카페 홀에서 절망스러운 표정 대신 행복한 표정을 자주 본다.

“스포츠센터에 있는 카페에서 3년간 일한 적이 있다. 직원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돈을 버는 전투요원으로 생각하는 곳이었다. 사장이 외출해서도 시시티브이로 감시해 ‘왜 저 테이블 아직 안 치웠느냐’고 닦달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설거지가 밀려도 되고, 좀 쉬어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이지혜(30)씨는 “일이라면 칼같이 해야 했던 성격인데, 이곳에 왔을 때 너무 널널해, 이렇게도 카페가 굴러간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현정(40)씨는 “여기엔 커피를 많이 팔아서 수익을 많이 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없고, 그냥 놀러 오듯 일하고 간다”고 했다.

창문카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그런데 오전 11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은 문을 닫고, 카페지기들끼리 카페수익금으로 점심을 먹고 쉬며 논다. 그런데 더욱 희한한 게 있다. 이곳 다목적홀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면 손님들이 한꺼번에 수백명이 몰려들어 주문이 늦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여러 손님들이 화를 내기도 한다. 이 카페 대표 격인 매니저 김윤희(37)씨는 “그럴 때는 아예 카페 문을 잠시 닫아걸고, 카페지기들은 밖에 나가 쉰다”고 했다. 분노의 와중에서 다투면서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 카페지기들끼리는 실수해도 서로 비판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지기반이 되어준다고 한다. 오연주(36)씨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새 메뉴로 토스트를 내고 싶어서 윤희씨한테 집에 있는 재료들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집도 먼데 일부러 가져와준 재료로 토스트를 만들었는데 엉망이 됐다.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재료부터 가져오라고 했냐고 타박을 당해도 쌌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위축됐는데 윤희씨가 오히려 ‘한번밖에 안 해봤잖아’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공통 관심사나 고민 터놓고 얘기

4년 전 문을 연 이 카페의 모태는 2012년에 서울 서초동에서 시작된 ‘카페오공’이다. 불교수행단체 정토회에서 활동하던 청년 등 23명이 100만원씩 출자해 정토회관 옆에서 독서동아리 겸 각종 모임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카페오공’을 하던 이들이 주축이 돼 인천 검암에 빌라들을 빌려 시작한 게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라는 주거공동체다. 창문카페 카페지기 중 2명은 지금도 우동사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도 대부분 우동사를 거쳤다. 또 우동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애즈원공동체에 몇달씩 유학도 다녀왔다. 따라서 애즈원이 하는 자아탐구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느긋하게 일할 수 있는 건 카페가 개인 소유가 아닌 협동조합이고, 서울시 공모사업이어서 저렴한 임대료가 뒷받침해줘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내적인 고민과 갈등과 불안에 대해서 대화하는 소통에 있다.

이들이 아예 욕망이나 욕구나 꿈도 없고, 돈 걱정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김윤희씨는 재작년엔 청년연대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한달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고, 작년엔 일본 여행도 네 번이나 갔다. 그는 “돈을 조금만 더 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만 그 ‘조금 더’를 위해 일터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프리랜서나 뜨개질로 수입 벌충

이지혜씨는 프리랜서로 일러스트레이션을 해서 번 것까지 합쳐도 한달 수입이 60만~70만원 정도다. 요즘은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요가 지도자 과정에 참여하는 비용 마련마저 녹록지 않다. 그는 “주위 친구들이 취업하고 결혼하면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들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1년 전까지 3년간 다녔던 직장생활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신의 장기인 뜨개질을 해서 모자와 소품들을 만들어 카페에서 팔아 수입을 벌충하기로 했다. 그는 “직장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돌아가 지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혼 11년차로 아이 없이 프리랜서 건축가인 남편과 사는 이현정씨도 마을여행을 하는 ‘마인드트립’이란 소셜벤처와 명상 클래스 운영을 겸하고 있지만 월수입은 10년간 직장에 다닐 때의 3분의 1도 안 된다. 그 역시 “수입이 쪼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직장에 다닐 때 우울증이 너무 심해 울면서 다녔다”며 “그땐 늘 달고 살던 과민성 설사가 어느새 사라졌고, 행복하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지금 확실히 덜 괴로운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김윤희씨는 매니저로서 “카페지기들에게 우동사 주거생활비 35만원과 최소한의 용돈, 그리고 정토회 ‘깨달음의 장’이나 애즈원의 자아탐구 프로그램 참여비 정도를 보조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당장 저축까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편하게 다른 인생을 탐구해볼 수 있는 이런 정거장 같은 일터들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한겨레

카페지기 이지혜씨가 손수 뜨개질해서 카페에서 파는 모자와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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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카페오공과 우동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창문카페가 중시하는 삶의 방식이 카페 창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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