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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직장인은 대학가 원룸 못떠나고…학생은 더 싼 방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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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신학기 방구하기 전쟁…보증금 2배 급등

매일경제

대기업 대리 김 모씨(32)는 세전 연봉이 4500만원인 남부럽지 않은 직장인이지만 취직한 지 3년이 지나도록 모교인 서울대 부근 원룸(서울 관악구 소재)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동작구·성동구 일대 연립빌라나 소형 아파트 전세 또는 반전세를 찾아봤지만, 보증금만 2억~3억원대라 언감생심이다. 20㎡(약 6평)가 채 안되는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이마저도 오는 여름 계약 갱신 시점에 집주인이 월세를 5만~10만원가량 올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씨처럼 취직했지만 원룸을 떠나지 못하는 선후배가 날로 늘어나는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집값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강남역 등 주요 직장 밀집 지역으로 통근이 어렵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서울대 출신은 물론 다른 대학 출신 새내기 직장인이 너도나도 서울대 부근 원룸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예비 처가 어른들께 원룸에서 신혼살림을 꾸리겠다고 말할 수 없어 결혼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할 때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대학생 원룸 값만 오르는 걸 보니 울화통이 치민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을 조롱하듯 고공행진하는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 상승세가 대학가 원룸 시세마저 끌어올리고 있다. 높아진 집값에 매매는 물론이고 전세까지 포기한 새내기 직장인이나 신혼부부가 대학가로 몰리면서 신입생·재학생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다.

집값 대비 대출 한도를 70%에서 40%로 낮춘, 전대미문의 '사다리 걷어차기'식 금융당국 대출 규제에 이 같은 부동산 품귀 현상까지 가세하면서 규제 목표 대상인 다주택자가 아니라 사회 초년생들의 주거비용 부담만 가중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재학생 지 모씨(27)는 최근 넓은 원룸으로 방을 옮기려다가 포기했다. 지씨는 "고시촌 쇠퇴로 주춤했던 일대 시세가 다시 오른 데다 졸업생들까지 가세하면서 최근 방값이 크게 올라 같은 조건에 비슷한 환경으로 옮기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학교와 거리나 공간 넓이 중 하나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원룸이라도 월세 50만원 이상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앱) '다방'의 2017년 서울 주요 대학가 월세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6년 상반기 대비 원룸 보증금과 월세가 가장 많이 오른 곳이 서울대 인근 지역(봉천동·신림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 보증금은 2016년 627만원에서 2017년 1227만원으로 96% 폭등했으며 같은 기간 월세도 37만원에서 45만원으로 21.6%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서울시내 대학가 원룸 평균 보증금은 전년 동기 대비 19%(220만원) 오른 1378만원, 월세는 2.5% 오른 49만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서울대 인근 지역의 경우 '싸다'는 평가가 원룸 가격을 크게 올렸다는 평가다. 집값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아파트 실소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으면서 매매하려던 수요자들이 1~2년 머무를 저렴한 곳으로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서울 안암동 원룸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 모씨(27)는 "2014년에 들어간 원룸의 보증금이 2016년과 올해에 걸쳐 3500만원 올랐다"며 "학교가 멀어도 그나마 여기가 사정이 나은 편이라 이곳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 전·월세난은 다주택자들의 투기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부근 아파트들은 대학생, 대학원생, 신입 교수를 대상으로 방별 월세 수입이 짭짤하다는 소문 때문에 갭투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일대 공인중개사들이 전했다.

고려대 인근에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김 모씨는 "현재 입주자는 56명, 누적 입주 신청자는 500명 이상인데, 원룸 가격 부담이 커지다 보니 취업한 뒤에도 계속 거주하는 졸업생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용건 기자 / 임형준 기자 / 강인선 기자 /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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