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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기천 칼럼] 평창 드론쇼와 '벼락치기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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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업은 미국의 인텔이다. 평창의 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인텔의 드론쇼는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였다. 사전 녹화된 영상이었지만 인텔의 첨단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한국에서 열린 행사에서 국내 기업은 잘 보이지 않고 외국 기업이 홀로 돋보인 것은 씁쓸한 일이다. 인텔이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와 최고 파트너십 계약을 맺은 결과라고 하지만 아쉬움이 크다. 드론쇼 못지 않은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부각시킬 방안이 없었는지, 아니면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지 궁금하다.

다만 기회가 있었더라도 국내 기업이 인텔을 대신해 드론쇼를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텔 드론쇼에는 가속도와 지자계(地磁界), 기압 등 센서기술과 위성항법시스템(GPS) 등을 이용한 측위(測位) 기술, 목표지점까지 이동하는 항법 기술, 바람이 불어도 기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제어 기술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동원됐다.

국내에서는 아직 드론의 자세제어와 통신, 드론 간 충돌 방지 기술 등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인텔은 1218대가 아니라 1만대의 드론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제 겨우 실외에서 20~30대를 동시에 운용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국내 드론산업의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부 규제 때문이다. 드론 비행에 대한 제한이 수없이 많아 마음 편히 드론을 날릴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미국 유통업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드론 배송도 국내에선 불가능하다. 정부가 작년 7월 뒤늦게 드론 산업 육성을 위한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갈 길이 멀다.

정부 규제만 탓할 일도 아니다. 드론쇼는 보기엔 화려해도 당장 돈 되는 사업이 아니다. 드론 군집 비행 기술의 비즈니스 가치는 아직 평가하기 힘들다. 정밀 제어기술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좀더 지켜봐야 할 부분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규제가 없더라도 국내 기업들이 드론 산업에 얼마나 적극 투자했을지 의문이다.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2014년부터 드론 군집비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국 드론 제조회사인 유닉(Yuneec)에 6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롯해 볼로콥터(Volocopter), 에어웨어(Airware), 프리시전호크(Precisionhawk), 어센딩 테크놀로지스(Ascending Technologies), '마빈치(MAVinci)'를 등을 인수하며 기술을 축적했다.

인텔은 단순히 중국 DJI가 장악하고 있는 상업용 드론 시장을 파고들어 점유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는 작년 인터드론(InterDrone) 전시회의 기조연설에서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data is the new oil)”라고 했다. 드론을 데이터 수집장치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를 위해 인텔은 ‘인텔 인사이트(Intel Insight)’라는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처리·분석 플랫폼을 선보였다. 드론이 촬영한 이미지 데이터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서비스다. 각종 시설물 관리와 농작물 작황 분석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드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 드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한국 기업들은 대체로 이런 부분이 약하다. 선진국의 성공 모델을 따라하는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 익숙해진 탓에 남보다 멀리 내다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서투르다.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전략도 시계(視界)가 짧고 좁은 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벼락치기 체질’이 굳어져 있다.

그동안에는 속도전으로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전략이 상당히 유용했다. 그러나 갈수록 경험과 노하우의 축적 부족으로 인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축적의 길’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개념설계 역량의 부족이 한국 산업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분야가 대표적이다. 구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인공지능 분야에 3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으며 꾸준히 기술을 축적했다. 한국은 2016년초 ‘알파고 쇼크’를 계기로 뒤늦게 법석을 떨며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는 대책을 급조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평창 드론쇼에서 1218대의 드론을 움직인 조종사는 단 한 명이었다. 그것도 컴퓨터의 이륙 버튼을 누른 것 외에는 달리 한 일이 없다. 드론은 사전이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비행했다. 자율주행차처럼 드론도 자동화·자율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선 드론을 날리려면 이론과 실기 시험을 거쳐 운전면허증 비슷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첨단 기술과 관련한 국내 시스템과 사고(思考)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경제 주체들의 인식과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첨단 기술 분야의 흐름에 맞춰 장기 비전을 세우고 꾸준한 실천과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조선비즈 논설주간(kc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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